헌 구두와 새 구두를 바라보면서
헌 구두와 새 구두를 바라보면서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3.01.0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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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새해가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은 송년회와 함께 한해를 보내는 행사가 많았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행사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많은 행사에 참석하면서 그동안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내 구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른 발에는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는 구두, 그리고 왼발에는 걸레처럼 낡아버린 구두가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나는 익숙해진 구두를 신고서 출퇴근하면서는 회사에서 건네주는 근무복을 입는다. 회사에서 근무복으로 갈아입는 다는 것이 마땅찮아서다. 무슨 행사가 있거나 외출을 하는 경우에는 새 구두와 외출복을 가지고서 출근한다. 하지만 깜빡 잊고서 출근하는 날에는 어쩌지 못하고 출퇴근하는 근무복을 입고 참석하기도 한다.

그날도 행사를 깜빡잊고 근무복을 입고 출근했다. 근무복을 입고서 참석하기에는 쑥스러운 행사였기에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퇴근시간이 되어 집에 들르니 벌써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이 가까워졌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외출복을 걸치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신발은 보지도 않고 달려간 행사장 의자에 앉고서야 신발이 짝짝이라는 알아차렸다. 하필이면 걸레처럼 낡아버린 구두였다. 신발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나도 모르게 발갛게 달아올라서 화끈거렸다.

북적거리는 행사장에서 내가 신은 구두를 내려다보는 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괜스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돌아서지도 못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행사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어쩌지 못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야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걸레처럼 낡아버린 구두가 마땅찮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에게 반갑다는 인사조차 못하고 돌아온다는 것이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슬그머니 벗어버리는 헌 구두가 안타깝다는 들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발바닥에 달라붙어서 고생하던 구두에게 적잖은 애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걸레처럼 낡았지만, 처음에는 유리알처럼 고운 구두였다.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고생으로 낡아버린 구두. 이제야 고맙다는, 고마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구두와 함께한 추억들이 제법이나 많았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유행이라는 것에 둔감한 나는 옷이나 신발에 별다른 욕심이 없다. 아내가 사다주는 옷이나 신발에도 괜스런 낭비라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아내가 타박하며 버리는 헌옷들이 아깝다. 무엇이든 정이 들었던 것들은 버리지 못하는 습성 때문이다.

아무리 아쉬워도 이제는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헌 구두를 바라본다. 가슴이 허전하다. 헌 구두처럼 이제 한해를 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별다른 일없이 한해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제는 새 구두를 신듯 새해를 맞았다. 신년에는 이루고 싶은 일들이 많다. 분에 넘치는 소망이 아니라 하나씩 채워가는 소망을 그려넣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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