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소중합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 승인 2013.01.0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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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타나토스(Thanatos)는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을 의신화(擬袖化)한 말이다. 이 용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정신분석학 용어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프로이드는, 자기 보존적 본능을 에로스(Eros)라 했고, 자기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본능들로 구성되는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Thanatos)라 했다. 사랑의 본능은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고,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며, 건전한 사회의 번창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죽음의 본능은 인간 자신을 사멸하고,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파괴하며, 처벌하며, 타인이나 환경을 파괴하려고 서로 싸우며 공격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죽음의 본능이 내면적 극단화가 되면 자기 살해 즉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며칠 전 유명야구선수가 자살을 했다. 그의 전 부인도 대단히 유명했던 여자 연예인으로서 몇 해 전 자살을 했다. 이들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 가족의 슬픔도 크겠지만,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이들의 죽음이라 많은 사람에게 타나토스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세계 1위의 상품을 만들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한류열풍을 일으킨 나라이지만 숨겨야 할 자랑스럽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자살공화국이란 현실이다. 경제성장 논리의 뒤편에서 소리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세계 1등 상품 뒤에는 청소년 자살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현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자살은 정신질환과 사회구조적 모순 그리고 죽음의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사회구조적 모순과 죽음의 문화에서 파생되는 자살이 우리 사회를 자살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사회구조적 이유는 참 비극적이다. 쌍용자동차 사건을 보자. 연예인의 죽음은 대단한 사건처럼 보도하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 22명이 죽을 때까지 세상은 모두 침묵했다. 기업도 언론도 정부도 사회도 그들을 외면했다. 오히려 강성노동자들이 기업의 어려움도 외면하고 더 많은 임금을 받으려고 시위만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은 쌍용자동차의 몰락은 시장상황의 변화와 기업주들의 잘못된 경영에 있었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위로받고 희망을 얻는다. 그런데 사회는 그들의 죽음을 원한 것이다. 실패한 정책과 기업 그리고 자본가들의 탐욕을 감추기 위해서 이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여기에 동조한 정부와 언론과 기업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 사회를 자살 공화국으로 만든 주범들이다.

죽음의 문화도 경계해야 한다. 희망을 버리고 죽음을 쉽게 선택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정권이 바뀌어 가며 다시 사형집행을 시행하자는 여론이 놓아가고 있고, 낙태를 더 부추기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가 기강과 사회질서의 확립이라는 미명하에 정치권과 언론이 합작이 되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다. 죽음에 대해서 무지하고 타인의 죽음을 외면하며, 더 나아가 죽어야 할 사람은 죽여야 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 억울한 타인의 죽음도 용납될 때 사회는 죽음의 문화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가 만연하면 그 죽음이 나에게도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사랑의 문화를 꽃피워야 한다. 강력 범죄자라도 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이 회개하고 다시 살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따듯한 이웃이 되어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어야 한다. 경쟁과 성공을 향한 삶에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로 변화되어야 한다. 더이상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도 죽음으로 내몰려서는 안 되며, 누구도 죽음을 스스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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