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겨울나무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1.0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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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맑은 유리창 밖의 겨울나무는 빈 가지만 앙상하다. 가는 나무꼭대기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지저귄다. 겨울의 찬바람은 알몸을 드러낸 나뭇가지를 마구 흔든다. 겨울나무는 말없이 하늘 아래 버티고 서 있다. 당당하다.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초겨울부터 시작된 눈은 자주 거리를 덮어 우리 생활을 불편하게 하였다. 남녘 땅끝 마을까지 예년에 없이 눈이 내려 엉겁결에 겨울을 맞게 되었다. 곳곳에 눈길에 미끄러지는 차들과 사람들로 정비소와 정형외과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준비 없이 다가온 눈 소식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더해준다.

며칠 전 새벽기도를 간 남편이 일곱 시가 가까워 오는데 귀가하지 않았다. 바쁘게 아침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사고가 났으면 어떻게 수습할까? 주차하던 곳으로 가 보았다. 눈 속에서 꼼작하지 않는 차를 계속 제동기만 밟고 있다. 안심이 되었다. 레커차를 부르라고 했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서류를 찾아 연락하고 차를 옮겨 놓았다. 그 자리는 자주 그렇게 힘을 들이는 곳인데 눈을 치우지 않아 또 그 고생을 하였다.

해마다 세탁기가 있는 곳은 수은주가 내려가 추워지면 얼어 세탁을 할 수 없게 된다. 올해도 추위가 혹독하여 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물을 끓여 세탁기 호수에 붓고 한참을 기다렸다. 녹은 얼음을 쏟아내고 다 녹였다. 그러나 수도꼭지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수도관까지 언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열풍기를 찾아 녹이는 수밖에 없다. 열풍기가 어디 있는지 남편은 지하실까지 내려갔으나 찾지 못하였다. 나는 이 층 방으로 가보았다. 막내아들방 한쪽에 눕혀진 열풍기를 찾아 내려왔다. 밤새도록 세탁기 옆에 약하게 돌려놓았더니 새벽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조금씩 나왔다. 해마다 겪으면서 올해도 준비 없이 지낸 것이 화근이 되었다. 현관 외벽에 스티로폼이라도 덧대었으면 동해를 피할 수 있었는데 생각 없이 시간만 보낸 결과였다.

창밖의 겨울나무를 바라본다. 잎사귀 하나 없이 드러낸 알몸으로 칼바람을 이겨낸다. 화려했던 가을의 기억도 아쉬움 없이 다 비우고 다시 돌아올 봄을 위해 모두 버린 것이다. 자연은 말없이 계절의 순리에 따라 자신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우리 사람들의 삶과 함께 보면 훨씬 앞서 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잘못을 고쳐나가지 못하고 눈앞에 닥쳐야 해결하는 습관이 미련하다. 자동차도 눈을 치우고 미리 준비를 했으면 레커차를 부르지 않아도 되었다. 세탁기 역시 해마다 거듭하는 일을 올해도 별생각 없이 살았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말았다.

새해가 되었다. 마음에 생각한 것은 즉시 작은 것 하나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한 해가 되도록 다짐해본다. 겨울나무처럼 미리미리 내일을 준비하여 후회가 없는 삶이 되도록 닮고 싶다. 참고 견디는 것은 외롭고 때로는 서글프고 초라해 보일 때도 있다. 언젠가 ‘외로움은 정신을 키우는 약’이라 하던 지인의 편지 한 줄이 생각난다.

찬바람을 이겨내며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처럼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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