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뿐인 지성을 포장하다
깡통 뿐인 지성을 포장하다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3.01.0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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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갤러리에 들러 전시된 작품을 돌아보고 차를 마시면서, 관람객들이 내게 건네는 말들 중에 공통적인 말이 있습니다. “미술에 대해서 조예가 깊어 참 좋으시겠어요.”아닙니다. 나는 그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종이만 있으면 그리고 쓰는 것을 좋아했지요. 지금 하는 일은 마음껏 그리고 쓸 환경이 안 되어 그럭저럭 살아오면서 화가가 되고 싶던 꿈에 대한 향수의 실현입니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내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선입견 때문에 미술에 대하여 이런 저런 해박한 지식이라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속으로 ‘아이쿠나!’ 싶고 송구스러워, 궁금한 것은 바로 책을 뒤져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는 합니다. 생각하면 청춘 한 때 그림을 너무도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쩌면 마이너스 인격에도 주워들은 지식만 있으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입니다. 그리하여 저 같은 사람에게 갖는 지성적 선입견도 무리는 아닐 듯합니다. 오랜 연륜으로 삶과 지혜를 터득한 교장선생님이 그 직위에 맞는 신세대 영어를 잘 못해서 무식하단 소리를 듣는다며 허탈해 하셨습니다.

지식과 지성과 지혜가 한 덩어리로 취급받습니다. 돈이 곧 인격인 세상이니 당연할 수 있는데 저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길가에서 호떡을 굽는 아저씨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고, 환경미화원은 물론, 일용직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많은 현실입니다. 제가 아는 버섯농장 아저씨도 다들 부러워하는 스카이대를 나와서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지만, 가끔 사람들이 농장 일을 하는 자신을 무식한 농군으로만 보고 말하는 것이 속상하답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겠지요. 그냥 무식한 농군이 되는 것이 편하겠지요. 하지만 농군이야 말로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자연에 순응하여 생명양식을 키우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못 배운 사람이 아니라 많이 배운 사람도 농사일이 좋아서 귀농을 하는 시대인데, 옷차림이나 유니폼이 주는 위력 때문에 사람들은 옷을 잘 입고 싶어 하고. 학사나 석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취직을 못하고 농사일을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졸업을 앞둔 아들이 취직공부가 바쁘다며 집에 오질 않습니다. 면접스터디나, 정보 공유하느라 힘이든가 봅니다. 지난 여름엔 뽀얗게 살이 오른 것 같더니, 2주전 다녀갈 때는 꺼칠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부모의 입장에선 나름 취직하겠다고 바쁜 것이 대견하면서도 안타깝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하니 취직이야 되겠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장 최고로 치는 직장을 구하려 하지 말고, 멀리 봐서 가능성이 보이는 직장이 더 좋겠다고요. 누구나 한 번 들으면 다 부러워하는 직장도 좋겠지만, 자신이 열심히 뜻을 펼칠 수 있는 직장이면 좋겠다고요. 끄덕끄덕 알았다며 싱글싱글 웃어주던 녀석의 얼굴이 문득 무척 보고 싶습니다.

영리함과 열정이 넘치는 젊음에게 지혜와 여유를 바란다면 부모 세대의 큰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젊음 자체로 빛나는 나이들이 폼 나는 일만 찾지 말았으면 합니다. 젊음이 곧 무한의 가능성이기에 다양한 모험과 고생을 즐기고 체험해도 끄떡없는 나이일텐데, 빨리 안주하려는 조급함도 갖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미래는 그들의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가졌던 자리에 대한 까닭도 없는 선입견 때문에 아들이 진정 즐겨하는 일을 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평생직장을 구함에 있어서 누구를 위한 지성이며 누구를 위한 분주함인지 잠시 생각했으면 합니다. 갤러리를 운영함에 있어서 깡통뿐인 나의 지성이 부끄럽지만, 좋아한다는 힘으로 계속 내일의 창을 열어 가리라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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