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미소
천사의 미소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3.01.0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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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허세강 <수필가>

순백의 가운에 하얀 모자. 그녀는 진정 천사임이 분명하다. 밝은 미소, 다정한 목소리, 고운 자태로 손님을 맞는 천사들과 함께하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봄눈 녹듯 사라지고 아픈 귀도 이 순간만은 괜찮다.

만성 중이염이 재발해 이틀에 한 번꼴로 동네의원을 다닌 지 벌써 석 달이 다되어 간다. 이곳의 천사들은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다감한데 지난번 찾아갔던 곳의 천사들은 무늬만 천사였지, 천사하고는 거리가 좀 먼 듯하였다. 무엇을 물어보아도 대답은 하는 둥 마는 둥 제 할 짓 만하며 뭐가 그리 좋은지 자기들끼리 쑥덕대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해도 답장이 없어 멋쩍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객이 너무 많아 오히려 신경질이 나는 모양이었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주사를 놓을 때도 무슨 한풀이라도 하듯 엉덩짝을 얼마나 세게 때리고 깊이 찌르는지 입이 딱 벌어져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밉게 보였다 찍히면 다음에 올 때 더 세게 때릴까 봐 겁이나 꾹 참는다.

주삿바늘 주위를 좀 문질러주면 손바닥에 쥐라도 나는지 송충이 대하듯 손끝으로 닿으락 말락 누르곤 퉁명스럽게 “문지르세요.” 한마디 하곤 휑하니 밖으로 나간다. “이 사람 천사 맞아?”하긴 온종일 수도 없이 쳐다봐야 하는 게 남의 엉덩이고 나의 거무튀튀한 핏기 없는 거친 그 모습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겠지만….

이런 곳은 아파도 참는 것이 낫지 두 번 다시 가고 싶은 맘이 일지 않는다. 인근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으로 인해 줄기차게 쫓아다니다 별 효험을 못 보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곳으로 주치의를 전격 교체했다. 이곳 천사들은 지난번 천사들과는 사뭇 딴판이다. 우리가 만난 것은 이제 겨우 두세 번 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관문을 열고 접수대에 가까이 가면 얼른 나를 알아보고 “허○○ 손님 이시지요?”라고 말을 건네며 순서가 몇 번으로 기다려야 할 시간까지 알려주어 다음의 행동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줘 얼마나 좋은지.

장사꾼이 사업하면서 고객의 인상착의를 기억했다가 상대편의 이름을 불러주는 배려, 이것은 이만저만한 상술이 아니다. 대성(大成) 아니면 갑부(甲富)의 기질을 타고 났다 해도 허튼 말은 아니다. ‘천시(天時)는 지리(地理)만 못하고, 지리(地理)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다. 원장선생님께서도 환자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궁금증 해소를 위해 그들과 대화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시며 온갖 정성을 다 바치신다.

오래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허준’이란 연속극을 시청할 때 명의(名醫)란 처방도 중요하지만 약을 달이는 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사를 얼핏 들었다.

그래서 그러한지 S 의원에서 치료받은 것이 이제 보름 정도 지났는데 상당한 차도가 있고 곧 완치될 예감이 든다. 딸아이가 내년에 대학을 진학하게 된다. 백의 천사의 부푼 꿈을 안고 임상병리과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4년 후 어떤 천사의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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