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와 자아
페르소나와 자아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2.12.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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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융(C.G Jung)은 자아의 외부를 형성하는 사회적 인격을 ‘페르소나(persona)’로 정의했다. 헬라어 페르소나는 ‘가면(mask)’이라는 뜻으로, 자아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대본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연극배우와도 같다. 흥미로운 것은 영어의 ‘성격(personality)’ 어원이 ‘페르소나’에서 왔다는 것이다.

자아(ego)는, 의식의 주체로서 본래적 ‘나’를 대표한다. 자아로서의 ‘나’는 유전적 기질과 잘 알려지지 않은 무의식적(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 내용에 의해 구성된 복합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 활동의 주체인 자아를 충분하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자기’를 찾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하는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자아가 의식적 인격의 중심이라면 페르소나는 사회적 적응을 위한 외적 인격으로서 자아의 구성요소이다. 자아가 어느 정도 일관성을 지닌 개인성인 반면, 페르소나는 임시적이며 변화 가능한 집단적 인격이다. 사회적 기능인 페르소나는 절대적으로 대상과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따라서 집단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는 페르소나는 자아를 대신할 수 없다. 자아는 철저히 개인성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사회제도는 집단의 이상을 대변하기 때문에 개인의 고유성을 수용하기 어렵다. 개인성(個人性)이 상실될 때 인간은 삶의 의미를 잃게 되며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하여 스스로 생명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급속도로 증가하는 자살 현상은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의 구별이 없을 때 주로 발생한다. 사회적 체면과 지위 그리고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존재감의 상실을 초래하여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진짜 상처를 입은 것은 자기가 아니라 페르소나 이다. ‘페르소나=자아(진정한 자기)’라고 여기기에 상처 난 자기를 보호하기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인격인 페르소나가 자아를 대신하게 될 때 진정한 자아의 기능은 상실된다.

집단의 원리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소위 유능한 인재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이 현대사회의 일반적 원리이다. 그러나 사회적 역할(페르소나)이 자아를 대변할 때 자아상실 상태가 되며 이것은 마치 집단에 함몰된 개인의 표상과도 같다. 예를 들어, 가족관계에서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나(자아)를 발견하는 부모가 되는 일이다. 자아를 발견할 때 자아존중감이 생길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존중감이 생길 때, 자녀 역시 자신의 고유성(固有性)에 따라 살게 된다.

인간의 존재는 너무 복잡해서 하나의 얼굴만으로 살 수 없다. 그리고 적어도 문명화된 사회 속 인간이라면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기가 가면을 쓴 채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타인만 속이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 건강한 인생은 자아와 페르소나와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삶이다.

공무원으로 조직 속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온 필자는 점점 더 자주 ‘나’와 ‘나의 페르소나’간의 괴리를 발견하고 움찔움찔해 한다. 페르소나와 자아를 동일시하고 살아 온지 20년, 나의 페르소나가 나인지 나의 자아가 나인지…. 깊은 묵상이 필요한 2012년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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