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축하
성탄 축하
  • 이제현 <매괴 중·고등학교 사목신부>
  • 승인 2012.12.2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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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제현 <매괴 중·고등학교 사목신부>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원제: Tokyo Godfathers)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영화에는 3명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느 주인공과 달리 외모나 살아온 이력이 참 볼 품 없습니다. 노숙자 아저씨, 가출 소녀, 여자를 꿈꾸는 남자가 성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무료배식을 받기 위해, 성탄행사를 참여합니다. 그리고 쓰레기를 뒤져서 성탄 선물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쓰레기 가운데 한 아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돌보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던 그들은 버려진 아기를 돌보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아기와 함께 성탄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탄의 의미가 화려한 조명에 있지 않고, 사람 안에 간직한 사랑의 빛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원제 가운데서 ‘대부’(Godfather)는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신앙의 후견인을 뜻합니다. 세례 받는 이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영화는 세상의 시선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주인공들에게 ‘대부’의 호칭을 붙여줍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미루지 않는 주인공들은 아기의 대부가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탄을 축하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면서도 정작 성탄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알려진 성탄 인사인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에서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미사가 없거나, 구원자인 그리스도 예수가 빠진 성탄은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린 껍데기와 같을지 모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은 성탄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반드시 성실히 이행하고,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하느님을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고,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사랑으로 나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교회에서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를 기념하면서, 여전히 말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에 눕힙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분의 자리는 우리 가정의 보금자리가 아닌, 마소의 밥통인 구유라는 점이 서글픈 현실입니다. 우리 이웃을 사람답게 사랑하지 못하는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예수의 성탄을 기념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한결같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희망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돈, 권력, 명예가 없어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고 구유의 아기 예수는 무력한 아기의 침묵으로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함께 성탄을 축하합시다. 화려한 조명 사이를 배회하거나 떠들썩한 술판을 벌이는 대신에 보잘 것 없는 이웃들에게 우리의 생명과 같은 시간을 나누면서.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생명의 빛을 기도와 사랑으로 밝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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