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청국장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12.2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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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형님, 청국장 조금 가져가세요.”

거실에서 일어서는 나를 보며 올케가 식탁에서 플라스틱 통 뚜껑을 열고 있다.

그곳에서 풍기는 청국장의 코린 냄새는 생전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비닐봉지에 덜어준 것을 집으로 가져와 저녁때 찌개로 끓였다.

청국장은 영양소와 섬유질이 많은 먹거리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예 집안에 들이지 못하게 한다.

다행히 우리 가족들은 좋아하여 가끔 끓여먹고 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오면 어머니는 청국장을 만들어 끼니때 자주 찌개로 끓여 드셨다.

장작을 땐 불을 모아놓고 그 위에 뚝배기에 장을 보글보글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집마당까지 난다. 산골 저녁나절 풍기는 청국장 냄새는 입맛을 돋우었다.

가을 콩수확이 끝나면 추수가 거의 마무리된다.

어머니는 흰콩을 깨끗이 씻어 검은 가마솥에 넣고 푹 삶았다. 그리고 헌 소쿠리에 헝겊을 깔고 삶은 콩을 넣어 흘리지 않게 마무리하여 가장 따뜻한 방 아랫목에 앉히고 헌 담요로 덮었다. 시골에서 아랫목은 난로나 마찬가지인데 이때는 청국장이 집안의 어른이 된다. 추운 겨울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시린 손을 청국장을 덮어 놓은 담요속의 가장자리에 넣어 녹였고, 발도 그 담요 주변에 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열이 식으면 장이 잘 뜨지 않는다고 성화였다.

며칠이 지나 콩을 숟갈로 떠보면 진득진득한 진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이것을 돌로된 절구에 옮기어 소금과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빻아 청국장을 만드셨다. 그리고 산마을 학교에 근무하는 딸에게 고향에 갈 때면 싸 주었다.

당시는 냄새도 이상해 저런 것을 해먹나 생각했다. 안 가져가려고 하다가 자취방에 가져와 김치와 두부를 넣고 끓이니 생각 보다 맛이 좋았다. 그러나 고민이 생긴 것이다. 겨울철에 추워서 방문을 열수 없으니 온통 방안이 청국장 냄새로 가득했다.

어느 땐 외투에도 청국장 냄새가 배어 사무실 동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맛에 길들여져 반찬이 없이 살았던 그때는 겨울이면 자주 밥상에 오르기도 했다.

요즘은 청국장이 웰빙 식품으로 대접 받아 여러 곳에서 만들어 팔고 있다. 다이어트, 변비에 그리고 여러 가지 영양이 골고루 담겨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청국장의 종류도 다양해져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쉽도록 환이나 분말로 만든 것, 전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처리한 것, 기호에 따라 선택해서 먹을 수 있게 개발되고 있다. 그때가 그리워 구입해 끓여보지만 어머니의 맛은 찾을 수가 없다.

청국장에 서린 어머니의 정은 청국장의 냄새 속에 녹아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자취방에 청국장 냄새가 배는 것을 별 것 아니라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던 처녀시절, 겨울이 되니 더욱 간절하다. 내일 아침에는 가을에 담근 김치와 두부를 넣고 청국장을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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