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니홍조
설니홍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12.1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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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것은 생명체의 숙명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자신은 죽음과 무관한 듯이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知人)들이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운명에 대해, 또 인생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곤 한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사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삶은 삶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의미가 있다고 위안을 하지만, 아무래도 인생의 허무함을 완전히 달랠 수는 없다. 이러한 인생무상(人生無常)은 자고로 시의 주된 테마였었고, 송(宋)의 대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남긴 시에도 나타난다.

아우 소철(蘇轍)의 시 민지회구(민池懷舊)에 화답하다(和子由池懷舊)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 사람의 삶은 어디에서라도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

應似飛鴻蹈雪泥(응사비홍도설니) :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눈 진흙을 밟은 것과 꼭 같다네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 진흙위에 어쩌다 발가락 발톱 자국 남기고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복계동서) : 기러기 날아감에 어찌 다시 동쪽 서쪽을 따지리오?

老僧已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 노승은 이미 죽어 탑 하나 새로 생겼는데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 무너진 벽에는 옛 글귀 찾아볼 길 없도다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 그 때 고생했던 일 아직 기억이 나는가?

路長人困蹇驢嘶(노장인곤건려시) : 길은 멀고 사람은 지치고 절뚝발이 나귀는 헐떡이고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든(人生到處), 그 모습은 무엇과 같은지를 묻는 것으로 시인은 입을 열었다. 동생에게 묻고 있지만, 답을 바란 것은 아니다. 결국 자문자답(自問自答)이었는데, 그 대답이 걸작이다. 가을 하늘을 높이 나는 기러기, 그 기러기가 잠시 비행을 멈추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그런데 내려앉은 곳이 공교롭게도 눈이 녹은 진창이다. 닿음에 가장 민감한 진창이다 보니, 기러기가 조심스레 사뿐히 내려놓은 발가락과 발톱도 그 자국이 선명하다. 찍히기도 쉽게 찍히지만, 흔적이 사라지는 것도 빠르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흔적, 그리고 흔적의 사라짐이다.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잠깐 땅에 내려앉아 남긴 흔적과도 같은 것이 인생이고, 그 흔적마저도 곧 사라진다는 것이다. 시인의 상념은 이어진다. 기러기가 진흙 위에 발가락 발톱 자국을 남긴 것은 누구의 뜻일까? 적어도 기러기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연(偶然)이라고 말한 것이다. 눈 진흙 진창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긴 기러기는 그 뒤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기러기는 다시 하늘을 날지만, 도대체 그 향방을 알 수는 없다. 하늘에서 내려와 우연히 발자국을 남기고 다시 하늘로 날아가는데 그 향방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눈 진흙(雪泥)처럼 자국이 잘 남는 데가 아니면, 왔다 간 흔적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상념으로부터 깨어난 시인은 쓸쓸히 자신의 인생을 반추(反芻)한다. 6년 전 아우인 소철(蘇轍)과 과거(科擧) 시험을 보러가다가 이곳(池)에 들렀던 일을 떠 올린다. 그 때 그들을 환대했던 스님은 이미 세상을 떴다. 그 흔적은 새로 만들어진 탑(塔)이지만, 이 또한 곧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 것은 이 뿐이 아니다. 그 때 스님의 방 벽에 써 놓았던 시도 사라졌고, 그 방과 벽도 사라졌다. 길은 멀고 사람은 지치고 말이 허덕이며 고생고생하며 이곳에 왔던 일들이 가물가물 떠오르긴 하지만 이미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인생의 우연함과 사라짐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시인의 솜씨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허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진한 여운이 뇌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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