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전쟁의 차이
운동과 전쟁의 차이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12.1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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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운동을 하다보면 전쟁하듯이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부분 운동을 잘한다는 점이다. 잘하니 더 잘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나쁜 것 같지 않다.

남들은 거꾸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호승심(好勝心)이 아무래도 지나치게 적은 것 같다. 운동을 제대로 배우려면 이기려는 마음이 강해야 연습도 열심히 하고 기술도 연마하게 되는데, 나는 게을러서 그런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연습도 안 하고 기술도 갈고 닦지 않으니 운동실력이 늘 꼴찌에서 머문다.

사람들이 ‘운동 수준이 어느 정도 되십니까?’라고 물을 때, 내가 잘 쓰는 표현이 있다. ‘나는 잘 못하는데, 내 주위의 사람들이 잘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어 맨 나중에 한마디를 꼭 덧붙인다. ‘그러니까 가장 잘하는 사람들 속에 끼긴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못합니다.’

겸양이나 농담 같지만 아니다. 난 늘 그렇다. 자기 실력을 스스로 평가하라면 모두 ‘내가 1등’이라고 말한다는데, 난 정말 그렇지 않다. 아무리 보아도 내가 가장 밀리는 것이 내 눈에도 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탄성이 절로 난다. 참들 잘한다.

이렇게 못하는 것을 알면 좀 더 잘하려고 애써야 할 텐데 영 그렇게 되지 않는다. 게다가 남보다 잘해야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서 실력향상을 꾀해야 할 텐데도 몸은 따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민폐’(民弊)다.

민폐일 줄 알고 있으니, 개선하라? 그럴 마음도 별로 없다. 져도 좋고, 이겨도 좋다. 남은 날 이겨서 좋고, 나는 한수 배워서 좋다. 이런 심보니 실력이 늘지 않는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을 가만히 보니 ‘사고실험’이 수준급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뿐만 아니다. 원리를 설명하고 문제점을 발견한다. 훌륭하다. 그런 점에서 구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이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고 나는 믿는다. 대부분 얼굴이 환해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사위감, 며느리감으로도 상급인 것 같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고가 되고 설명이 되는 덕분에 잘 가르친다는 점이다. 가르칠 정도면 수준급이라는 것, 삼척동자도 다 안다. 나는 가르칠 수 있는 종목으로는 수영 하나뿐이다. 수영은 지상에서 손동작 한 번 해보라고 하면 그 사람의 수준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나머지 운동은 도무지 가르칠 수가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해 내가 어디쯤 있는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반성 없는 운동이 최상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운동은 전쟁이 아니다. 운동은 운동이라고 부르고, 전쟁은 전쟁으로 부르는 까닭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스포츠 정신이 곧 싸움은 아닐 테고, 전쟁을 스포츠 정신으로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과 운동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둘 다 이기고자 일을 벌이고, 때로는 남을 속이기도 하는데 왜 다르게 불릴까? 운동에는 ‘정신’ 또는 ‘영혼’이라는 말이 붙지만, 전쟁에는 그런 말이 왜 붙지 못할까?

나의 유일한 결론은 이렇다. 전쟁은 남을 죽이고 운동은 남을 살린다. 얘긴즉슨 이런데, 그러한 정신이나 영혼이 살아있지 않은, 남을 죽이는 운동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나는 변명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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