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폭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12.05 2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 읽는 세상
윤 제 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 점…… 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떼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 눈이 내리고 창밖을 보는 어른들 걱정이 태산입니다. 잔 걱정이 많을 수록 눈은 폭설로 내립니다. 삽시간에 세상이 온통 하얘집니다. 나무마다 눈꽃이 피고, 콘크리트 건물들이 하얗게 옷을 갈아입습니다. 거리에선 개구쟁이들의 신나는 눈장난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술같은 폭설에 발을 묶이고, 마음까지 묶입니다. 그래서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하는 자연의 힘은 세상의 속도를 줄여주는 삶의 브레이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