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먹기
손으로 먹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11.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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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인도인은 밥을 손으로 먹는다. 왜 그들은 그러는가? 문명화된 현대에서 수저를 쓴다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왜 그들은 손으로 먹는가?

인도인은 화장실에 갈 때 휴지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물로 뒷일을 한다. 하다못해 기차에도 휴지 대신 수도꼭지가 덩그러니 달려있다. 그것도 낮게 달려 뒷일을 보기 좋게 해놓았다.

만일 당신이 새벽녘에 잠 못 이뤄 인도의 바닷가를 어슬렁대다가 손에 깡통을 들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가 볼일을 보러가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철사줄에 매달려있는 깡통인데 거기에 물이 담겨져 있다면 필경 그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볼품없는 물통의 용도는 하나밖에 없다.

어떤 유명한 문명비평가는 이런 인도인을 칭찬할 했다. 먼저, 개인위생에 철저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의 비데를 말그대로 수동(手動)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도 어른들의 표현으로는 ‘뒷물한다’는 것인데 인도인들은 그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다음, 만일 십 수억의 인도인들이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기 시작하면 전지구의 나무가 남아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종이는 나무로 만들고, 그들이 휴지를 쓴다는 것은 곧 나무를 뽑아버리는 것과 같다는 논리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인도인의 습관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어째든 인도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 그런 좋은 습관을 버리지 말도록 고무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두 손을 쓰는 용도를 철저하게 구별한다. 뒷물하는 손은 왼손이고, 밥 먹는 손은 오른손이다. 계급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손에게도 계급을 부여한다는 생각이 나에게는 강하게 드는데, 어째든 두 손도 하는 일이 다르다. 인도인들에게 카스트(cast)라는 계급을 물으면 대체로 자티(jati)라는 직업으로 대답하는데, 그것처럼 두 손의 직업도 다른 것이다. 물론 인도의 직업에는 철저한 귀천이 있다.

인도에서 처음에는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디나 숟가락은 있었고 따라서 불편은 없었다. 게다가 걱정스러운 것은 카레를 늘 먹는 인도인이라, 손으로 카레를 비며먹으면 냄새가 지워지지 않으리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역인의 지위를 고수했다.

그러다가, 사람들 속에서 튀기 싫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런 마음이 생겨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음식의 촉감은 정말 즐길만했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순간부터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즐거운 식사시간이 입에서부터가 아니라 손에서부터 시작되니 즐거움이 두 배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래서 이들은 손으로 먹는 것이구나!

어린 시절 꼬마동생은 인도친구네에 놀러갔다가 돌아와서는, ‘오빠, 왜 인도사람은 밥을 꼬집어 먹어?’라고 물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쾌락의 연장에 대해서! 그러나 나는 종종 아무 생각 없이 왼손을 쓰다가 인도인의 시선을 느낀 적이 많다. 내 두 손의 촉감은 똑같았지만, 그들의 나쁜 계급의식이 나의 늘어난 즐거움에 눈총주고 있었다.

혹여나 중국인이 비슷한 깡통을 들고 다닌다고 인도인처럼 볼일보러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들고 다니는 그것은 대체로 밥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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