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말뚝
나무말뚝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11.2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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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마경덕

지루한 생이다. 뿌리를 버리고 다시 몸통만으로 일어서다니,

한자리에 붙박인 평생의 불운을
누가 밧줄로 묶는가

죽어도 나무는 나무
갈매기 한 마리 말뚝에 비린 주둥이를 닦는다

생전에
새들의 의자노릇이나 하면서 살아온 내력이 전부였다

품어 기른 새들마저 허공의 것,
아무 것도 묶어두지 못했다

떠나가는 뒤통수나 보면서 또 외발로 늙어갈 것이다

◈ 죽어서도 무엇이 된다는 것은 행복하다 하겠습니다. 베어져 말뚝이 될지언정 어느 생명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내어주는 일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지루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가지와 뿌리가 잘려나가고 몸통만으로 대면하는 세상은 비와 바람, 시간의 흔적으로 낡아가는 일입니다. 오늘 그 나무의 자세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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