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이름
'아내'라는 이름
  • 김성수 <청주 새순교회 목사>
  • 승인 2012.11.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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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성수 <청주 새순교회 목사>

얼마 전 결혼 29주년을 맞았다. 아내는 젊고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와서 머리숱이 많이 빠지고 몸도 적당히 불어 중년 부인 티가 날만큼 나이를 먹었다. 남편에 대한 외골수 사랑으로 15년을 살았는데, 알고 보니 속았다고 이제 긴 한숨을 쉬기도 하는 귀여운 아내다.

젊은 날 직장이었던 교직(敎職)과 교회에서도 교사로 가르치면서 청소년, 청년들과의 스케줄로 많이도 쏘다니고, 매 주일 찾았던 소년원, 맹아학교 학생들과의 미팅 등 외부 일로 워낙 바쁘게 살았던 탓에 아마도 남편의 정체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성정이야 어디 갔을까. 여전히 급하고, 다혈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옆에 있는 사람을 들들 볶는 성격인 나를 어지간히도 인내하며 곁을 지킨 지 30년 세월이 된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어떤 비서도 내 아내는 못 따라올 것이다. 눈치는 백 단, 코치는 이 백 단이 다 되었다. 본래부터 책임감이 강하여 맡겨진 일에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지만, 성질 급한 남편과 그 아버지를 꼭 빼닮은 세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시달렸던지 마치 바닷가 파도에 씻겨 닳아진 몽돌처럼 아담한 성격이 되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유쾌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아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문학을 전공한 남편보다 훨씬 말을 잘한다고 거드는 사람도 있다. 상황 묘사에 능하고,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심리를 적확하게 꿰뚫는 재주가 있다. 촌철살인의 명언은 아니지만, 한마디 말로 상황을 초토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이 모두가 모난 남편 비위 맞추느라 훈련받은 남편 덕(?)이겠지만.

때로는 묵묵히 곁을 지키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유머로 좌중을 휘어잡기에 저절로 미소가 날만큼 아름다운 아내지만, 때로는 매섭게 꼬집기도 하고, 때로는 칭얼대며 불평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내가 밉다. 너무 닦달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선생이었는데 이제는 아내가 나의 선생이다. 누구는 잘하고 싶지 않은가. 잘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살인데. 더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더 충실하지 못하다고 불만이다. 그래서 조금 마음이 불편해지면 당신은 ‘세계 4대 악처야.’하며 푸념을 해댄다.

그래도 남편 하나를 위대한 사역자로 만들어 볼 엄청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처럼 아침, 저녁으로, 어떤 때는 하루종일 침대에 머리를 박고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무 과분한 아내를 주셨구나 하고 감사할 때가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나, 존경이란 멍에를 메고 결혼을 해서, 온갖 수고와 헌신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고, 교회의 사모로, 힘들어 하는 동료의 멘토(Mentor)로, 이제는 남편의 선생이 되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어쩌면 나의 아내는 모자란 남편을 채워주기 위해 보낸 천사 같다.

딸아이는 네 아빠만 같은 남자 친구 데려오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겨우 고른 사람이 아빠냐?’라고 핀잔을 주면, ‘그래도 고은삼거리 이남에서 제일 똑똑한 남자였다’고 편을 들어주는 아내, 엄청난 기대에 못 미치는 남편에 대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는 아내, 힘들어도 버티면서 잘 견뎌주는 아내가 곁에 있어 나는 행복한 남편이다.

누군가 “다시 태어나면 또 아내와 결혼하겠습니까?”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내 아내밖에는 결혼할 여자가 없을 겁니다. 그녀가 나를 가장 잘 아니까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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