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0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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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가진다는 것
정숙자 <수필가>

얼마 만에 보는 화창한 날인가! 며칠 퍼붓던 장마도 끝나고 이제부터 불볕더위라던데, 더위를 다른 사람보다 두 배나 타는 체질이라 여름에는 꼼짝도 하지 않아 오죽하면 '동면'도 아닌 여름 '하'자를 써 '하면' 한다고 했을라고….

그래도 오늘은 뜨거운 햇살이 반갑다. 계속된 폭우로 꼭꼭 닫아두었던 집안에서는 물비린내도 나는 것 같다.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놓고 두 팔 걷어붙이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해도 표시 안나는 집안 일이지만 오늘 제대로 해 보이리라. 우선 이불 빨래부터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베란다 청소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몰라보게 자란 화초들을 보니 달리 신경 써 준 것도 아닌데 부쩍 잘 자라 주어서 기분 좋다. 베란다 난간에 이불을 널면서 마당 있는 집이 세삼 부럽다. 마당 이쪽과 저쪽 긴 줄을 매달아 하나 가득 빨래를 널고, 긴 장대를 중간에 받쳐 높게 세워두면 바람에 이리 저리 날려 그 뽀송뽀송한 감촉은 생각만으로도 느껴진다.

코끝으로 음미하며 커피 한 잔 타서 베란다 한쪽에 걸터앉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나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좁지만 사방으로 책이 빼곡히 차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잡동사니가 진열되어 있다. 그 한 구석에는 시화도 한 점 이젤에 누워 있고, 작은 테이블 위에는 앙증맞은 화초도 몇 개 놓여 있다.

괜스레 우울한 날이면 유독 책 욕심 많은 내게 헌 책방으로, 서점으로 내 몰던 그 열정을 기억나게 해 잠시나마 가라앉게 해 주는 작지만 커다란 공간이다.

무얼 하느라 그동안 찾지 않았던 걸까 바쁜 탓도 있었지만 일부러 외면한 이유도 있었다. 내게 또 다른 거울 같은 그 곳은 게으른 나를 채찍질 해 주고 반성하게 해 주는 곳이기도 하여서 미안한 마음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거꾸로 꽂힌 책이 없나 확인하고 책 정리도 다시 하면서 매일 한 번 이곳에 앉아 글밭을 가꾸며 내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 보충수업 끝나고 돌아 올 시간인데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매일 쓸고 닦고 하는데도 먼지 쌓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얼굴에 땀범벅이 되고서야 집안 청소 끝! 이렇게 한바탕 유쾌한 청소와의 전쟁도 벌일 만하다. 그 뒤에 따르는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으니 하루의 통쾌함은 보너스, 더위 물리치는 데는 역시 삼계탕이 최고다. 서둘러 압력밥솥에 안치고 청소하느라 말이 아닌 매무새 단장하고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하면서 가끔이나마 내가 좋아하는 집안 어느 한 곳에서 차 한 잔 마셔 주는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대한민국 아줌마들! 여러분들의 그곳은 제발 주방이 아닌, 작지만 근사한 집안 어딘가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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