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에 대한 단상
김장에 대한 단상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2.11.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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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어린 시절 이맘때면 마을 입구의 우물가는 항상 김장배추가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우물가에선 매일 집집이 돌아가며 김장을 담그는 풍경이 펼쳐졌다. 아주머니들께선 흙이 튄다고 멀리 가서 놀라고 하였지만 아이들은 괜히 궁금하고 들떠서 우물가를 맴돌았다. 그러다 간을 보라며 새빨간 양념을 배추 잎에 돌돌 말아서 입안에 쏙 넣어주면 새끼제비들이 동그랗게 입을 벌리듯 나란히 줄서서 받아먹던 아이들. 그 매콤 달달한 맛과 흥성스런 분위기로 김장하는 우물가는 종일 분주했다.

그런가 하면 개울에서 절인 배추를 씻어서 마당가 멍석 위에 그득 모여 앉아 배추 속을 넣던 기억. 모처럼 가마솥에 돼지고기가 삶기고 육개장이 끓여지고, 밥에 국만 부어주면 금방 무쳐놓은 겉절이 하나만으로도 배가 불렀던 그 시절. 그러던 것이 집집이 수도가 놓이고부터는 김치를 씻기 위해 개울가에 놓이던 널빤지 위의 배추 쌓인 풍경도 사라지고 우물가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졌다.

종가인 우리 집의 김치 담그는 날은 잔칫집이나 다름없었다. 며칠 전부터 어머닌 독을 닦아내시고 독 안에 방금 나온 숯불을 부삽으로 퍼다 넣으시곤 신문지나 떼어낸 창호지를 태우셨다. 몇몇 아주머니들과 배추를 절이는 일로 꼬박 하루를 지나 밤까지 보내셨으니. 적게는 세 접 많게는 다섯 접의 김장을 담그는 일은 숙모님들과 이웃사람까지 종일 부산스러웠다. 철이 들어 김장이란 엄마를 일에 지치게 한다는 것. 장을 담그고 엿을 고고 두부를 만들고 제사를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를 힘들게 하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이란 생각이었다.

ㅠ그러나 김장을 담그는 일 만큼이나 집집이 김장독을 묻는 일도 겨울맞이였으니 아버지는 샛노란 햇볏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김치광을 덮으셨고 그 샛노란 옷을 입은 움막은 아이들 숨바꼭질을 할 때 놀이터였을 뿐만 아니라 왠지 따스한 은신처만 같아서 찐 고구마를 먹기 위해 동치미를 뜨러가는 일도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김장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작은아이 자모일을 보게 되면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급우들의 김치를 해주자고 논의를 했고 실행에 옮겼으니 모처럼 많은 김치를 하면서 김치가 중요한 겨울양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치라도 넉넉해야 겨울이 따스하지 않겠느냐고, 우리 아이들만 잘 키우면 뭣하냐고, 나중에 지들끼리의 한 세상인데 마음 따스하게 자라야 하지 않겠냐고 하던 자모들은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나서도 학교에 의뢰해서 몇 년간 더 김장김치를 지원했었다. 함께 모여 밥 해먹고 보조개를 피우던 얼굴들이 이맘 때면 보고 싶어 새삼 안부를 전하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해마다 김장나누기 행사를 하던 적십자에서도 올핸 다른 행사로 대체할 정도로 김장김치가 아쉽지 않고, 무엇보다 김치전용고의 역할이겠지만 김장을 하던 푸근한 풍경을 만나긴 점점 쉽지 않겠다.

이 시절 김장김치를 포함한 김치종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채소발효식품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데 김치가 영양과 건강에서 인정받는다면 마늘과 갖가지양념과 젓갈을 포함해 10여가지가 어우러진 맛의 힘일 테다.

사람도 혼자서는 깊은 맛의 저력이나 삶의 조화로움을 꾀할 수는 없으니 어울림과 어우러짐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김장김치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나저나 절임배추가 배달되어 김장하는 과정이 더욱 편해졌으니 한바탕 어울려 김장 담그는 풍경은 영영 멀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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