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새로운 출발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11.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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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둘째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다. 며칠 전 수능 시험을 끝내고 지금은 주말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논술 시험을 보러 다니고 있다.

솔직히 수능시험을 썩 잘 보지 못했다. 접수해 놓은 상위권 대학은 무리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논술 시험을 보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뭇 망설여 왔다. 아이가 미련이 남는지 접수를 해 둔 것이니 간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모든 일정을 미루고 강행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열이 세계 1위라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정말 갈 때마다 놀랍다. 꽉 찬 주차장 꽉 찬 학부모 대기실은 그야말로 엄숙모드다.

넓은 강당이 학부모로 꽉 차 있지만 소란스럽다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말은커녕 모두가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들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커피 한잔 말고는 무엇을 먹는 사람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아는 학부형들을 만나도 가볍게 목례만 할뿐 마치 이야기를 하면 자기 아이의 행운이 날아가 버리기라도 하듯 극도로 말을 아끼고 침묵하는 분위기다. 시험이 정시에 끝나는 것을 알면서도 30분 전에 나가 건물 입구에서 떨면서 기다리는 부모들을 보면서 새삼 부모라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아이는 어제 80대 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의 학과에 시험을 치렀다. 잘 치르고 못 치르고를 떠나 엄청난 경쟁의 물결에 휩쓸려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시험이 아니어도 살면서 힘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련만 한창 나이에 입시라는 무거운 짐에 눌려 있으니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논술을 잘 봐야만 잘못 본 수능 시험을 만회할 수 있으니 아이는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고통의 연속이리라.

어제도 아이는 오전 오후 논술 시험으로 맥이 빠져 파김치가 됐다. 낮선 곳에서 시험을 봐야 하고 긴장한 탓인지 틈만 나면 차안에서 쪽잠을 자는 아이가 안타깝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무리 부모가 열성적이고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최종 마무리는 아이 자신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오후 시험이 끝나고 대학교 2학년인 큰아이가 자기네 학과 문학인의 밤에 연극 연출을 맡아 공연을 하니 꼭 보러 오라는 초대에 학교로 향했다. 큰아이 역시 2년 전에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지 못해 많이 속상해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더니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복수전공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공연예술을 하면서부터는 많이 달라지고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조그만 소극장에서 아이가 연출한 연극을 관람했다. 연극의 선택도 젊은이들답게 2012년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시점에서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과 책임감에 대한 것이었다. 끝나고 배우, 기획, 연출을 맡은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한마디씩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인사말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이었다. 연출은 기획에게, 기획은 배우에게, 배우는 연출과 조명에게 석 달 동안 연극하나를 끝내고 많은 것을 배운 어린 학생들은 저마다의 감회에 눈물을 흘렸다. 이런 후배들에게 이미 경험한 선배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마지막 교수님들은 대입수험생의 삶에서 취업 준비생의 삶으로 곧장 연결 되는 요즘 대학생들의 여유 없음을 안타가워 하시며 강의실 안의 수업 못지않게 값진 경험을 주었을 것이라 믿는다고 하셨다. 어리게만 봤던 큰아이는 저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 협력하고 나누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대견했다.

누구보다 지금 막 실험과 도전 앞에 서 있는 작은아이의 감회는 남다른 것 같았다. 대학을 가든 가지 않든 각자는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앞날의 꿈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출발하는 아이들의 앞날에 무한한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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