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단상(斷想)
수능 단상(斷想)
  • 이제현 신부 <매괴 여중·고 사목>
  • 승인 2012.11.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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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제현 신부 <매괴 여중·고 사목>

지난 주는 유난히 빨리 지나갔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소위 수능은 수험생만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수능을 이틀 앞둔 날, 학교에서 수험생들을 위한 미사와 행사가 있었습니다. 먼저 수험생들을 위한 기원미사에서는 그동안 성실하게 준비해온 시간들이 알맞은 열매를 맺기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손을 얹어 수험생들에게 안수(按手)하며,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주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선배들을 응원하였습니다. 틈새 시간을 이용하여 준비한 노래와 춤 등으로 수험생들로 하여금 부담감을 떨치고, 시험에 임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능 당일, 평소보다 일찍 미사를 마치고, 교장신부님, 수녀님, 선생님들과 함께 고사장에 수험생들을 격려하러 갔습니다. 이 지역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딱 두 군데여서 그런지, 고사장으로 들어오는 수험생을 응원하는 모습은 꽤 치열합니다. 시험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학교마다 응원의 구호와 노래가 점점 커졌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시험을 치르게 될 학생들이 도착할 때마다, 담임선생님들이 일일이 격려해주고 안아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날씨와 고사장의 분위기에 움츠러들었던 학생들의 얼굴은 선생님들 덕분에 조금은 넉넉해진 것 같아 좋았습니다.

수험생들이 고사장에 들어간 후에, 선생님들과 아침식사를 하며 한 해의 소감을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선생님은 ‘다시 시작’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능시험이 학생들에게 사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첫 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로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날 때를 즈음하여 다시 한 번 선생님들은 고사장 앞에서 학생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치르고 나온 학생들에게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새 힘을 불어넣어주는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전통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마친 학생들을 맞으러 갔던 한 선생님은 떠들썩했던 아침과 달리 썰렁하고 쓸쓸한 풍경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새로 시작하고 준비할 때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만, 끝에 가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랑을 시작했다면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만물은 저물어가고 죽어가지만, 우리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왕 시작했다면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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