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 책갈피
단풍잎 책갈피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11.1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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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현관 입구에 산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지난해와는 달리 그 빛깔이 비단처럼 고와 현관을 오갈 때마다 눈길이 머문다.

처연한 마음으로 그 단풍잎새를 따며 떠나가는 길이 아름다운 그 잎새의 삶을 생각해 본다. 사람의 마지막 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무척 화려하다. 며칠 후면 낙엽으로 지겠지….

안타깝다.

소녀 시절이 기억난다.

고향의 양짓말 건너 한학자 할아버지가 사는 집 옆에 작은 야산이 있었다.

그곳에는 큰 산소를 중심으로 소나무와 밤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며 우리가 놀기 좋은 잔디밭도 함께 있었다.

그 서쪽엔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아기 손바닥 같은 단풍나무가 있었다.

가을이 깊어져 그곳에 가서 놀 때면 단풍잎이 고와 그때도 몇 개를 따서 책갈피에 끼워 말리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겨울 방학 때 친구들에게 편지 할 때 한 장씩 끼워 보냈다.

지난해 수필집 한 권을 내며 지인들에게 말려서 코팅해 두었던 단풍잎 책갈피를 책과 함께 보내게 되었는데 작은 것에 감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 감정은 남녀노소 모두 같다는 마음이 든다.

지금 나이가 육십이 넘었는데 어린아이들처럼 아직도 그런 일을 한다고 비웃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만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 나 자신이다.

마음이 그렇게 쏠리는데 별도리가 없다.

내가 조금 노력해서 다른 사람에게 정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눔의 문화가 퍼져가는 때에 아주 작은 것으로 나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풍잎은 멀리서 볼 땐 모두 한 가지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단풍의 손바닥이 모두 다 다르다.

다섯 장, 일곱 장, 우리 집 뜰 앞에 있는 산 단풍은 아홉 장이다. 사람의 얼굴모양이 다르듯이 단풍잎의 모양도 제각기 다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기단풍은 다섯 손가락 단풍이다.

아침 산책길에 가을을 마무리해 가는 단풍 곁으로 다가갔다. 곱게 물든 잎새를 따서 모으며 겨울을 그려본다.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단풍잎 책갈피를 곱게 만들어 편지 속에 넣어 보내야겠다. 책갈피가 되기까지는 단풍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고, 그 잎을 채집하고, 책 속에 끼워 잘 말린 다음 코팅을 해서 오리기까지 대여섯 번의 손길이 간다.

그 아기단풍의 예쁜 잎에 서린 정은 생각할수록 따뜻해진다. 봄에 피는 아지랑이를 선한 눈으로 바라보듯이….

추억이 묻어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보내기까지의 사랑이 고스란히 작은 단풍잎 책갈피 속에 묻어 있는 것이다. 작은 정이 담긴 책갈피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잠시라도 행복에 젖게 해 주리라 믿는다.

머지않아 해 저무는 12월이 다가온다.

고왔던 단풍은 낙엽으로 지고 빈 가지에 겨울바람만 매섭게 불어 올 것이다. 차가운 밤하늘을 기러기들은 날고 앙상한 가지에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날 회갑이 넘은 그리운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고왔던 가을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준비해둔 단풍잎 책갈피를 편지 속에 함께 넣어 우체통으로 발길을 옮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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