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해장국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11.08 2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서울에서 설렁탕이라고 하면 김영삼 대통령이 자주 가던 ‘봉희’ 설렁탕이 있고, 모래내에는 ‘모래내’ 설렁탕이 있다. 비슷한 동네지만 봉희는 국물이 진하고, 모래내는 옅은 맛으로 시원하다. 봉희 설렁탕은 ‘봉이’ 설렁탕으로도 전국에 널려 있다.

그런데 유독 설렁탕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곳이 청주다. 육거리 시장통에 ‘금강’ 설렁탕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개신동의 분점을 냈다가 철수했을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열광적이지는 않다. 우암동에도 연탄불로 끓여내는 ‘우암’ 설렁탕이 있지만 지역성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곳곳의 유명점의 이름을 딴, ‘한촌’ 설렁탕 등이 성업 중일 뿐이다.

설렁탕은 청주의 지역문화에 맞지 않았는가? 아닐 것이다. 곰국은 한국인이라면 지역을 막론하고 즐겨 먹었던 것이고, 그와 비슷한 설렁탕은 우리의 입맛에 안 맞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청주에 설렁탕 문화가 성행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청주에는 설렁탕보다는 해장국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청주에는 해장국집이 참으로 많다. 동네 이름 어디나 해장국이라고 붙이면 될 정도다. 청주가 아닌 다른 지역의 상호를 갖고 청주에 들어온 해장국집도 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그 동네의 맛으로 청주에서의 승부를 보지 못한 것이다.

청주를 나가면 이러한 개별성이 보편성을 갖으면서 ‘청주’ 해장국이라는 이름이 쓰인다. 청주를 떠나면 만나는 것이 청주 해장국이다. 그러나 청주 안에는 청주 해장국이 없다. 한국에는 ‘전주’ 비빔밥이 있어도 ‘한국’ 비빔밥집이 없는 것과 같다.

왜 이렇게 청주에는 해장국이 유명해졌는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바로 남주동 시장 안의 해장국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뼈를 고아 만든 것은 물론이고, 선지에 우거지, 그리고 칼칼한 맛까지 갖춰, 청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해장국의 진가는 청주를 벗어나야 더 확실했다.

나는 청주에 사람들이 놀러 오면 아침에는 늘 ‘남주동’ 해장국을 대접했다. 남주동 해장국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도, 같은 계열인 ‘산남동’, ‘봉명동’ 등도 맛을 전수받은 집들이었다. 학회로 1박을 할 때 저녁에 아무리 고기를 먹여도 그다음번에 잘 먹었다는 소리를 못 들었지만, 아침에 해장국을 먹여놓으면 그 다음 학회 때 “그 해장국 참 맛있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저녁은 대강 먹이더라도 아침에는 꼭 청주 해장국을 먹여야 했다. 돈도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인사 받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청주 해장국에 있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손님이 왔을 때 청주 해장국이 아닌 동네 해장국을 먹였더니, 몇 해 전에 와서 먹었던 그 해장국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이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잘못된 고기를 팔았다는 것, 단골들이 분노했다는 것, 그래도 나는 가보았더니, 문을 닫았다는 것 등등.

다시 찾을 손님을 위해 전화를 해보았더니 시장 안의 해장국집은 문을 다시 열었다. 친척들이 하던, 범청주 해장국은 모두 간판을 내려야 했지만, 말이다.

대우자동차, 이제는 사라진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말 아쉬워하는 것은, ‘대우’라는 세계적인 이름이었다. 사람을 바꿀 수는 있어도 이름을 한 번 세우기는 무슨 일보다도 힘든 것이다. 인문학, 그것은 이름을 세우는 학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