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랑주머니 -어머니학교 1
사그랑주머니 -어머니학교 1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11.07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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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이정록

노각이나 늙은 호박을 쪼개다 보면
속이 텅 비어 있지 않데? 지 목 부풀려
씨앗한테 가르치느라고 그런 겨.
커다란 하늘과 맞닥뜨린 새싹이
기죽을까 봐, 큰 숨 들이마신 겨.
내가 이십 리 읍내 장에 어떻게든
어린 널 끌고 다닌 걸 야속게 생각 마라
다 넓은 세상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여.
장성한 새끼들한테 뭘 또 가르치겄다고
둥그렇게 허리가 굽는지 모르겄다.
뭐든 늙고 물러 속이 텅 빈 사그랑주머니를 보면
큰 하늘을 모셨구나! 하고는
무작정 섬겨야 쓴다.

◈ 엄니의 구수한 사투리가 들어있는 문장을 읽습니다. 소리의 높낮이도 희미한 충청도 어투로 두세번을 읽고서야 입안에 조금씩 감겨옵니다. 느릿한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만나는 큰 숨은 엄니의 자궁입니다. 한껏 몸을 부풀려 하늘과 조응하는 엄니의 세상입니다. 굽은 허리로 둥글게 그려보이시는 엄니의 가르침은 큰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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