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풍경화
창 밖의 풍경화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11.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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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가을, 너 덕분에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밤이 외롭지 않다. 사막 한가운데 있어도 오아시스가 있어 꿈을 꿀 수 있듯이 너로 인해 요 며칠 추억에 젖어 행복했다. 이제 잎을 거두고 조용히 겨울에게 양보하고 물러나고 있지만 지천명을 맞는 나에게는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

늘 가을 너 다음에 올 겨울을 먼저 생각 했고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는 아름다운 가을을 보기보다 한발 앞서 겨울 대비만을 했다. 그러기에 가을은 쓸쓸함과 아쉬움만으로 만 느꼈는데 이번 가을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 덕분에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며칠 전 중학교 친구가 날 찾았단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30년도 훨씬 지났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날 찾아보고 싶은 이유가 “가을” 때문이라 했다. 유난히 단풍이 고운 올해 플라타나스 길을 걸으며 우리가 다녔던 중학교 등굣길이 생각났다 했다. 정문에서부터 수 십 미터 늘어서 있던 플라타나스 길을 생각하다 보니 그곳에 머리가 단정하고 늘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가 조금 올라간 그래서 근접하기 더 힘들었던 내가 있었다고 했다. 아름드리 플라타나스 나무 뒤에 숨어 옆 고등학교의 짝 사랑하던 오빠를 기다리며 얇은 입술을 오무리고 있는 내가 오버랩 되어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는 구나. 다행이 내가 검색이 됐고 한참을 전화로 수다를 떨다 지난주 커피숍에서 만났다. 하지만 그 친구가 살아온 길이 순탄치 않았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중학교 선배였던 남편을 일찍 보내고 아이 둘과 살아 온 그녀였다. 병든 남편의 간병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결국 남편이 고생한 보람도 없이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는 친구 앞에서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찻집에 앉아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둘이 바라보았다. 다행이 일찍 결혼했기에 아이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고 능히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다. 그녀에게 남편과의 아름답고 긴 추억이 있어 오늘이 하나도 쓸쓸하지 않다는 친구를 보면서 앞으로도 그녀의 삶이 저 가을 하늘처럼 곱기만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니네가 뭘 아는 나이냐고 했을 15살 소녀, 소년이었던 그들은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 했고 서로를 위해 살아가고 싶어 했다. 그들은 부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른 결혼을 했고 이른 이별을 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 생생하게 15살 소녀였던 내가 되 살아났다. 그 시절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히 떠오르고 친구들의 안부가 못 견디게 궁금했다. 그동안 이렇게 절실히 옛 친구가 궁금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를 만나고 온 후 며칠째 추억에 푹 빠져 지냈다. 지금이라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추억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옛 연인이 사랑하지는 않지만 잊지 못해 꼭 한번 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부질없는 기대도 하고 짝사랑 했던 그 오빠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리고 다 물거품이 되어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가라앉았지만 나의 가을은 친구와의 특별한 만남만으로도 그 어느 해 보다 넉넉하고 포근했다. 모두다 가을 너 때문이고 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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