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는 소리
가을이 가는 소리
  • 김성수 <청주 새순교회 목사>
  • 승인 2012.11.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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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성수 <청주 새순교회 목사>

얼마 전 친구 내외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3박4일의 꿈 같이 행복한 여행이었다.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을 인솔하면서 서너 번, 육아원 아이들에게 제주도 관광을 시키겠다고 1일 찻집을 열고 그 아이들을 인솔하면서, 목사 안수 기념으로 함께 동문수학하던 동료 가족들을 규합해 이래저래 예닐곱 번은 족히 다녀온 제주도였지만, 이 번 만큼 마음을 비우고 여유롭게 다녀온 여행은 없었던 것 같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는 국제관광지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인공물을 설치하고, 넓은 주차장을 조성하고, 볼거리와 관광 요소들을 가미하여서인지 조금은 낯설고, 자연미가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새롭게 개발한 섭지코지나 주상절리, 가을단풍이 곱게 물든 성판악을 오르는 단풍터널 등 너무 아름다운 제주의 자태에 넋이 나갈 뻔했다.

탁 트인 하늘과 가는 곳마다 기기묘묘하게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연의 예술품들을 관람하면서 이 땅에 제주도를 선물로 주신 창조주께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누가 이처럼 아름다운 세계를 연출할 수 있을까

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제주의 황홀한 자태에 취하여, 친구와의 대화, 여행지에서 누리는 여유로움 속에서 오랜 쓰레기를 치운 것 같은 마음의 대청소를 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켠으로 너무 내 일에 파묻혀 시간을 사느라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상쾌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나누지 못한 죄책감이 들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동분서주하는 교회직원들을 생각할 때, 그들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면서도, 삶의 기쁨과 여유를 함께 하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는데, 가을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여름내 정열을 불사르던 나뭇잎들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다 이제는 지쳐 늦가을 스산한 바람과 초겨울 비에 가지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뒹글고 바람에 밀려 거리를 헤맨다. 사람들은 쓸쓸함에 대하여 한 번쯤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가을이 가는 모습이 못내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세월이 흘러 청춘의 열정은 식고, 머리는 히끗히끗해지고, 지나간 젊음이 남긴 자취는 아쉽고,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아쉬움이 오버랩되기 때문은 아닐지.

70대가 되면, 10년만 젊었어도 하며 아쉬워한단다. 60대가 되면 한 10년만 젊었어도 하며 아쉬워한단다. 지나간 뒤에는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고, 서글퍼지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이야 세월 탓으로 돌린다 해도 가는 젊음은 그냥 보낼 수 없지 않겠나! 가을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래도 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단풍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사명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이 움트는 봄부터,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정열을 불태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거기다가 형형색색 아름다운으로 가을 단풍까지 자기 몫을 다한 만족감이 있었으리라.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졸라매야 하겠다. 또 다시 아름다운 생명의 잔치를 창조하기 위해서. 자연이 자기 몫을 다하듯, 내게 삶을 맡겨주신 창조주의 뜻을 이 땅에 새기기 위해서. 또한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가족, 동료, 이웃들에게 기쁨과 행복과 여유로움을 더불어 같이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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