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 먹자
밥 한 번 먹자
  • 정규영 <청주 중앙동>
  • 승인 2012.10.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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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규영 <청주 중앙동>

우리네는 아주 쉽게 건네는 말이 있다. 진심이든 거짓이든 인사치레의 말로 건네는 말이다. 바로 ‘밥 한 번 먹자’ 라는 인사다.

나 역시도 이 문장을 종종 써 먹는다. 친한 이에게는 친한 정도의 나름으로, 안면만 있는 인사에게는 접대용 인사말로 쓰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아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손으로 돈을 벌면서 부터인 것 같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지인에게 미련의 아쉬움을 덤으로 얹어 이 말을 하며 손을 꼭 부여잡는다. 그러면 상대방 역시, 나의 의견에 동조하며 이 말에 고맙다는 표현을 덤으로 얹어 나에게 따뜻한 눈길, 내지는 곧 만나자는 확답을 받고서야 부여 쥔 내 손을 놔준다.

‘밥’에 중요도가 얼마나 깊은가 하면 연인들의 첫 만남에서부터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처음 만난 남녀 사이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분명 후딱 마셔 치우는 밍밍한 커피가 아니라, 따뜻한 밥을 서로에게 먹이고, 먹고 싶어 한다. 물론 서로에게 호감이 없다면 차 한 잔 마주하고 마시고 싶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올 핑계거리를 찾을 테니 말이다.

옛날에 먹는 게 귀해서 우리네 조상들이 이리 먹는 것에 목을 메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우리네의 정서 같다. 좋은 것을 같이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정이 밑바탕이 되어 그럴 것이다.

나 역시도 유난히 먹이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둔 덕에 자주 짜증 부린 일이 떠오른다. 지금은 훨씬 덜하지만 나의 중, 고등 시절은 무조건 적인 야간 자율 학습과 입시 속에 밤 12시가 되어야 집으로 오곤 했다. 이때는 인문계고 학생이라면 누구할 거 없이 그랬다. 12시쯤 귀가하는 딸래미가 안쓰러워 어머니는 그 늦은 시간에도 밥을 차려 내셨다.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고 온 화풀이를 나는 만만한 어머니께 해댔다.

“안 먹는다고, 안 먹어. 엄마 때문에 살만 찐다고”

급식이 없던 때라 도시락 두 개를 새벽부터 싸셔야 했던 어머니셨다. 그런 어머니가 공부하느라 지치고 배 곯았을까 염려되서, 한 술이라도 더 먹이고 싶으셔서 차려 냈던 밥상이었다.

이렇듯 사랑하는 이, 좋아 하는 이에게 누구 할 것 없이 밥을 먹이고 싶고 함께 먹고 싶다. 내 어머니도 사랑 표현의 한 방법이었다. 그런 사랑이 곧 ‘밥’으로 함축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 있어 필수 요소인 ‘밥’이 지금에서는 홀대를 받고 건강을 이유로 멀리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 ‘밥’은 옛 말에도, 옛 이야기에도 존재해 명맥을 보란 듯이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밥’을 사랑한다. 나는 밥이 품고 있는 그 따스함을 사랑한다. 나는 그 밥에 스며든 그 사람의 마음을 사랑한다. 그래서 인사치레라도 ‘밥은 먹었냐’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하나보다.

모 시인의 강연회에서 그 시인은 그 사람이 좋다, 친하다는 감정이 들 때 그 사람과 하고픈 일이 밥을 먹이고 싶다, 그 사람에게 맛난 밥을 사주고 싶다 라고 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 시인의 감정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그 이와 내가 어느 정도 친밀감을 갖는다고 느낄 때는 밥을 먹이고 싶다. 내가 사준 밥을 그 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걸로 보면 밥이 갖고 있는 함축적 의미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표현보다 진하고 구수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홀대의 말로 치부 되었 던 ‘밥 한 번 먹자’의 그 큰 포용성을 제대로 써야겠다.

인사치레가 아닌, 헤어지고 난 뒤 뒷통수의 뜨끈 거림을 피하고자 하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내 가까운 이들에게 밥 한 번 직접 해 주진 못하더라도, 그 시간을 함께 하고프다는 마음으로 내뱉어야겠다.

오늘은 어서 서둘러야겠다.

시간을 만들어서 라도 ‘밥 한 번 먹자’고 손을 잡고 소박한 집밥 하는 곳으로 이끌어야겠다. 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손이 두 개뿐이라 아쉽지만 못 잡은 손 있어도 서운해 마시라. 이미 마음이 다 붙잡았으니. ‘밥 한번 먹어요’ 라고 암묵의 손길이 당신을 이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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