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밟으며
낙엽을 밟으며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10.29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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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황금같이 귀한 10월의 주말이다. 산은 온통 화려한 단풍으로 장식되어 가을의 절정인데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린다. 가을비에 수북하게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아침 산책을 한다. 왠지 낙엽을 밟는 마음이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낙엽을 밟으며 잠시 사색에 잠긴다.

며칠 전부터 출장을 가게 되어 생각지도 않은 가을의 풍광을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되었다. 방문하는 곳마다 가을이 화려하게 펼쳐있는 것이다. 노란 은행나무와 커다란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버티어 학교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함께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꿈나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결실의 계절인 만큼 자연도 풍성하며 아름답다.

잘 가꾸어진 학교 숲과 또한 교정의 국화꽃 향기가 나그네에게 향수에 젖게 한다. 흙으로 다져진 산골 학교의 작은 운동장이 정겹게 눈 안으로 들어온다.

요즈음 도시의 운동장은 온통 인조잔디로 흙을 볼 수 없게 조성되었으나 산골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운동회 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마음에 신선하게 다가오는 농촌의 정겨운 풍경이다. 도시의 건물을 자주 바라보며 지내던 내겐 설렘으로 가득했다.

눈길 머무는 산자락 계곡에는 맑은 물소리와 파란 하늘이 꿈결처럼 흐르고 있다. 쇠잔해진 눈과 마음을 온통 정결하게 씻어 주었다. 귀가하는 길에 잠시 계곡에 서서 그곳에 담긴 파란 하늘과 주변의 오색 단풍을 바라본다. 신선이 따로 없다. 내가 신선이다.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눈에 가득한 가을은 지난 시간을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40년 전 이 길을 구두를 벗어 손에 들고 얇은 스타킹만 신은 채 걸었다.

면 소재지까지 버스가 다니고 그 곳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친구가 있는 곳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높은 구두를 신고 먼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호젓하게 난 산골의 개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친구가 근무하는 학교에 도착했다.

목이 말라 물을 찾자 친구는 옹달샘으로 나를 안내했다. 학교 아이들이 그 옹달샘 물을 먹는다고 했다. 자루가 긴 조롱박 바가지로 물을 한 모금 떠서 마시니 물맛이 꿀맛이었다. 아련한 추억이다. 동심으로 가득한 그곳의 작은 학교도 소식을 들으니 문을 닫고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와 통폐합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도회지로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시골학교가 하나 둘 폐교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내가 방문한 산골 작은 학교에는 귀농한 이들의 자녀들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을 찾아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 자녀들이 꿈을 키우고 미래의 삶을 가꾸어가는 젊은이들이 늘어 가면 좋겠다. 가을 정취가 가득한 산마을 배움터에. 낙엽을 밟으며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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