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관계에서
사람관계에서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2.10.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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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피천득의 ‘인연(因緣)’이란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피천득 그가 일본 도쿄에서 만난 아사코라는 소녀와의 수십 년에 걸친 세 번의 만남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만남이 거듭될 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마지막에는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마지막 구절은 아려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내용이다.

살아가면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혹은 입히거나 하여 서로의 마음을 다치면서 살아가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인간관계란 항상 좋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늘 배려하고 양보하여야 하는 힘겨움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가끔씩은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의 성숙된 마음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고 아직도 미성숙된 인간인지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그냥 무조건적으로 용서할 만큼 너그럽지는 못한 것 같다.

사람들은 인연이 깊으면 깊을수록 서로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을 때 겪게 되는 아픔의 깊이는 더 넓고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때론 서로서로를 해(害)하여 악연이 되기도 하나보다.

불교에서는 지금 나를 해하는 사람은 전생에 내가 해를 끼친 사람이기 때문에 현생에서 그 업보를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과 자비로 용서해야 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적을 만들지 말라고 했던 스승의 말처럼 결국 인간관계는 돌고 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더 큰 악연을 끊기 위해서는 내가 포기하고 인연을 놔버려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놔버리지 않으면 내가 더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는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배우게 되지만 어떻게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배우거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운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사람에 대한 적응력만 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손해 보지 않는 손익계산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 같다. 때론 비겁하지만 적당히 타협하면서 또는 한 발 뒤로 빠져 거리를 두며 속내를 감추고 사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이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와 나보다 나를 더 아끼는 아내와 가족이 있어 이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힘이 바닥나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인연이란 내가 스스로 맺어가는 인간관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간관계의 끈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인연이고, 내가 용기 내어 그 연을 끊어내면 악연 또한 끊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겨울이 오기 전 또 한 해가 가기 전 나로 인해 작은 상처라도 받은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리고, 좀더 성숙된 모습으로 악연의 고리를 스스로 끊는 용기를 내며 살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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