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바다의 국화 배
술 바다의 국화 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10.2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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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가을하면 생각나는 꽃은 단연 국화일 것이다. 들판 산판 할 것 없이 하얗고 노랗게 형형색색으로 지천에 깔린 게 들국화이다. 음력 구월구일 중양절(重陽節)에 꺾는 구절초(九節草)를 비롯하여 쑥부쟁이, 개미취, 산국, 감국 등 이름도 각양이다. 약재로 쓰이기도 하고 관상(觀賞)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용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꽃이 국화인 것이다. 또한 본디 주인이 없어서 꺾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할 만큼 흔하면서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자존심과 지조의 선비 품성과 은자(隱者)의 탈속(脫俗)한 풍모를 지닌 것이 들국화이다. 국화가 은자(隱者)의 꽃으로 불리게 된 것은 중국 동진(東晋)의 도연명(陶淵明)에서 연유한 바가 크다.

◈ 술 마시며(飮酒其七)

秋菊有佳色 (추국유가색) 가을 국화에 고운 꽃 피어

露其英 (읍로철기영) 이슬에 젖으며 그 꽃잎을 줍네

汎此忘憂物 (범차망우물) 시름을 잊게 하는 술에다 이것을 띄워

遠我遺世情 (원아유세정) 나의 탈속한 마음을 멀리 전하려 하네

一觴雖獨進 (일상수독진) 한 잔 술을 비록 혼자 마시지만

杯盡壺自傾 (배진호자경) 잔이 다하면 술병이 저절로 기울어지네

日入動息 (일입군동식) 해 들면 모든 존재들 움직임을 멈추고

歸鳥趨林鳴 (귀조추림명) 돌아가는 새는 숲을 향해 지저귀네

嘯傲東軒下 (소오동헌하) 동편 툇마루에서 휘파람 불고 거니노니

聊復得此生 (요부득차생) 애오라지 이러한 삶을 다시 어디서 얻을까?

가을이 오기 전까지 국화는 그저 들판의 이름 없는 풀이었다. 고운 빛깔의 꽃(佳色)이 핀 순간, 국화는 잡초에서 가을의 꽃(秋菊)으로 거듭 났다. 관직에서 물러나 시골에서 초막을 짓고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던 시인에게 가을을 맞아 가장 귀하고 반가운 손님은 국화였다. 그는 가을 어느 날 문득, 곱게 핀 국화꽃을 보게 되자 반가운 마음에 옷이 젖는 것도 마다 않고 떨어진 국화 꽃잎 줍기에 나선다. 가색(佳色)이란 말에는 곱다는 뜻 외에 진귀(珍貴)하여 얻기 어렵다는 뜻도 들어 있다. 철(?)은 줍는다는 말로 꽃을 함부로 꺾거나 따지 않고 소중히 다루는 시인의 마음을 잘 담고 있다. 이처럼 시인에게 추국(秋菊)은 진귀한 존재이자, 꽃잎 하나마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소중한 대상물인 것이다. 옷 젖는 것도 마다않고 주워온 국화 꽃잎을 시인은 어디에 쓰려고 한 것일까? 시인은 세인들처럼 국화주를 담그거나 국화차나 국화전(菊花煎)을 만들지 않고 있다. 시인은 술잔의 술에 띄우기 위해 국화 꽃잎을 주운 것이다. 근심을 잊게 하는 물건이라는 뜻의 망우물(忘憂物)은 술을 도연명(陶淵明) 식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면 시인은 왜 국화 꽃잎을 술에 띄우는 것일까? 술이 근심을 잊게 한다는 것은 시인의 말 속에서 알겠는데, 국화 꽃잎은 이러한 술과 어떻게 매칭이 되는 것일까? 술잔의 술이 망망대해(茫茫大海)라면, 국화 꽃잎 하나는 그곳에 띄워진 조각배이다. 조각배는 파도를 타고 바다 건너 먼 곳으로 갈 것이다. 근심을 잊게 하는 바다를 넘는 배에 실린 것은 시인의 마음이고, 그것은 다름 아닌 욕망과 시비다툼의 속세(俗世)를 떠난 마음(遺世情)이다. 결국 시인은 자신의 탈속한 생활을 술과 국화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탈속한 은자(隱者)의 기품을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피는 국화에 빗대는 것은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근심을 잊게 하는 술을 기울이며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삶을 추구하는 도연명(陶淵明)에게 국화는 바로 도연명(陶淵明) 자신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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