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코스모스
  • 이제현 신부 <매괴 여중·고 사목>
  • 승인 2012.10.2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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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제현 신부 <매괴 여중·고 사목>

요즘 학교 주변은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코스모스(cosmos)라는 이름처럼 ‘우주’를 품고 있는 코스모스 꽃술 속에는 별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에 선들거리며 인사하는 코스모스 덕분에 가을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코스모스의 이름이나, 꽃술의 모양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피어난 코스모스가 더 특별한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우리 학교의 교장 신부님은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해 꽃을 심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꽃을 통해 학생들의 심성도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기대하며, 어떤 꽃을 심을 것인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계신 수녀님들과 함께 꽃의 모종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길가에서 발견한 손가락 한 마디 남짓의 풀을 잔뜩 가져왔습니다. 그 풀이 지금의 코스모스가 되었는데, 그때는 보고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너무 작고 꽃도 없어서 도무지 코스모스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종을 빈터에 심고 물을 주는 것을 도왔습니다. 특히 수녀님들이 정성껏 가꾸었는데, 어느 정도 크면 곧바로 다른 곳에 옮겨 심곤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웬만한 해바라기보다 키가 큰 코스모스를 곳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피어난 코스모스를 보면서, ‘청소년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는 것도 코스모스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돌아보면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살겠다고 하면서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바로 청소년들의 가능성은 꼭 겉으로 드러나는 꽃과 같은 재능이나 능력이 아니라, 코스모스의 모종처럼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희망을 찾습니다. 청소년들이 머무는 학교, 가정, 교회라는 자리에서 사랑이라는 물을 주고, 가능성을 깊게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준다면, 자신도 이웃도 행복하게 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을 믿으며 기대합니다.

물론 한철만 피고 지는 꽃이 아닌, 우주를 품은 사람이 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두울 때 비로소 가치를 드러내는 별과 같은 이상을 품은 사람, 가까이 있는 이웃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더불어 소통하는 사람을 키우기 위하여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오늘은 기꺼이 감수할만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폭력, 비행 등등의 수식어로 청소년들을 단죄하거나, 한낱 성적표의 숫자로 청소년들을 재단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보다 먼저 청소년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터를 일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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