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7.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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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랑(Ⅵ)
아마도 황진이 하면 누구나 그녀를 잘 알고 있는 듯 생각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를 묻는다면 사실은 아는게 별로 없는 것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황진이이다. 좀 안다면 그저 조선시대의 절세가인이며, 시조를 가슴에 절절이 와 닿도록 지었던 전설처럼 아름다운 기생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필자도 고교시절 황진이의 시조 한가락에 반하여 상상속의 황진이를 만나곤 했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시조

이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인가. 중·고교 시절 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황진이의 이러한 시조를 접하고 가슴 설렘으로 몇날며칠을 지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조의 절절한 그리움 배인 사랑표현에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몇 백년 전에 한 여자에 의해 쓰여 진 몇 줄의 시가 갖는 문학의 힘에 대해서 찬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것은 문학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부분으로 작용한다는 증거이고, 어쩌면 인간의 삶과 문학이 일체처럼 느껴진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기생하면 언뜻 남자와 육감적인 사랑을 나누고 술과 잡다한 얘기와 노랫가락 정도 부르면서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접대하는 여자 정도를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기생의 대부분은 그러했을 것이다. 만일 황진이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면 한낱 관원 남성들의 노리갯감으로 존재했을 뿐 이렇게 유명하고 신화적 존재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특별하고도 신화적인 황진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황진이의 전기에 대하여 상고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료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기에 간접사료인 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야사인 만큼 세월의 살이 붙어 많은 자료가 전해지고 있기는 하나 각양각색으로 다른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어 분별에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후대로 올수록 너무나 신비화시키는 바람에 더욱 그 허실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허균은 그의 사적 식소록(識小錄)에서 그녀를 맹인의 딸이라고 했고, 이덕동의 죽창야사(竹窓野史)나 이덕형의 송도기이(松都奇異) 등에서 설화 비슷하게 출생을 기록하였으나 거의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신비의 베일에 싸인 여인 황진이.

그녀는 조선 중종 때 개성의 기생이었다. 그녀는 1520년대에 태어나서 1560년대 쯤 젊은 나이에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거문고를 잘 타고 고혹적인 매력을 지닌 기생 진현학금과 황진사 사이에 태어난 황진이는 용모가 출중하고 예민하였으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면으로 출중한 황진이를 옆집 총각이 짝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황진이의 양모 신씨는 그 총각을 절대로 만날 수 없게 하여서 그 옆집 총각은 그만 상사병으로 죽게 되었다고 한다. 발인 날이 되어 그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다가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고, 이것을 안 황진이는 속저고리를 벗어 상여를 덮어주니 그제서야 상여가 움직여 장지로 갈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황진이는 기생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기생은 선비들을 상대 했으니, 그들의 학문적 예술적인 면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시조와 노래, 거문고나 가야금과 같은 악기를 심도 있게 다룰 줄 알았으며, 대부분 관원 남성들이나 그 밖의 선비들과 육감적인 사랑놀이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황진이는 육감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고차원의 정신적 교양과 그녀의 미모와 지성이 부합되어 그 당시 수 많은 명사들의 애를 태웠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어서 황진이와 관계된 인물로는 여럿이 있지만 송도삼절 중의 하나인 화담 서경덕, 왕족 벽계수, 면앙정가로 유명한 재상 송순,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소세양이나 이사종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있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걸출한 인물과 놀아야 되나 보다. 루 살로메도 릴케, 니이체, 프로이드 같은 세기의 유명인사와 관계되니 황진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황진이의 얘기는 살이 쪄가고, 황진이를 소설화한 전경린 같은 현대문인들에 의해서 황진이는 단순한 기생이 아닌 시조 시인으로 거듭나고 전 국민의 애인이 되어 버렸다.

특히, 황진이가 오늘 날까지 숭앙을 받는 것은 그녀의 문인다운 면, 즉 현재 남아 있는 6수의 시조와 일정한 학문적 교양을 쌓아야 지을 수 있는 한시 4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진이처럼 많은 세월이 흘러도 사모할 수 있도록 가슴에 와 닿는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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