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떡'을 아시나요?
'똥떡'을 아시나요?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2.10.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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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오래전 우리네 변소(화장실)는 대게 가장 외진 곳, 어두침침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변소 내부는 전등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나무판자로 바닥을 얽혀 놓았다. 어린 아이들은 종종 큰일을 보다가 똥통에 빠지는 일들이 비일 비재했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기곤 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무서운 변소, 그 변소에 빠진 아이. 그리고 변소에 빠지면 오래 못산다는 속설이 있어 두려움에 떠는 아이. 어린아이가 똥통에 빠지면 얼마나 놀라고 두려울까?

혐오스러운 냄새, 수치스러움과 불안감까지 뭉쳐져 아이는 변소 가는 일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변소에 안 갈수도 없는 일. 변소에 갈 때마다 아이는 똥통에 빠졌을 때의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트라우마(심리적 외상, trauma)가 증폭된다.

이때 지혜로운 어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먹기도 힘든 하얀 쌀을 곱게 찧어 두려움에 떠는 아이에게 떡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똥떡 똥떡" 하고 외치며 이웃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게 하였다.

'똥떡'에는 우리 조상의 심리치료에 대한 지혜를 볼수 있다. 심리치료에 사용하는 연합이론(association theory)과 직면(直面·confrontation)이 그것이다.

첫째로, 아이가 변소에 빠지므로 시원하게 배설을 해야 할 장소가 '변소=두려움' 으로 조건화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떡은 '변소=두려움=떡'으로 연결이 되어 '변소=떡'으로 조건형성이 될 수 있다.

변소에 대한 두려움을 떡이 상쇄시키는 것이다. 자동차를 광고하는데 예쁘고 날씬한 여자를 등장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둘째, 똥통에 빠졌던 아이는 직접 떡을 들고 동네를 돌며 '똥떡, 똥떡' 하고 크게 소리를 친다.

예기치 않은 간식거리를 받아든 이웃들은 아이에게 좋은 덕담을 해주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녀석 놀랐겠구나?' 하며 머리도 쓰다듬어 주기도 하도 놀리기도 한다.

아이는 이웃들로부터 관심과 격려를 받으면서 자연히 똥통에 빠진 황당한 경험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 이것이 직면이다.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없었던 일로 애써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마주보는 것이 직면이다.

직면은 피하지 않고 마주서는 걸 말한. 트라우마가 왔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직면'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

똥떡은 변소에 빠진 아이의 불안, 수치, 공포를 치유하는 놀라운 트라우마 치료 메커니즘이다.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준 똥떡을 통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변소에 갈수 있다.

고등학생인 딸 아이는 시험만 앞에 두면 머리를 뽑고 손가락을 빠는 퇴행적인 행동을 보인다.

'시험=두려움'으로 조건형성이 된 것이다. 시험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조그만 심리적 처방을 한다.

시험기간 2주 정도부터 가끔 딸아이가 놀랄 정도의 용돈을 아무 조건 없이 준다.

'시험기간=두려움'에서 '시험기간=두려움=용돈'으로, 그리고 '시험기간=용돈'으로 조건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딸아이의 자아가 충분히 강하게 될 때 '직면'을 시킬 것이다. 다만 자아가 충분하게 강하지 못할 경우 외부(교사, 부모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네 부모님이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똥떡을 해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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