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이어온 의병장 가문을 아시나요?
3대 이어온 의병장 가문을 아시나요?
  • 김명철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2.10.16 2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김명철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말이 있다.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뜻한다. 이는 지배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 격언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레스)' 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청도를 '충효의 고장이라'고 말한다. 그만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 입구 가로수 길 끝에 별로 주목 받지 못하는 얕트막한 작은 산에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한 자랑스런 인물의 사연이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의해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조선 전체가 일본의 지배에 들어가기 직전 최초로 왜적으로부터 성을 탈환한 지역이 바로 청주이다.

'청주성 탈환' 전투 한 가운데에 의병장 박춘무가 있다. 왜적이 국토를 유린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 청주 복대동일대에서 아들 동명과 아우 춘번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격문을 지어 700여명이 넘는 의병을 모집해 청주 부모산성에서 군사 훈련을 시켜 의병장 조헌선생과 영규대사와 협공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것이다.

박춘무 선생의 집안은 평소 자식들에게 "전장에서 용기가 없는 것은 효가 아니다."라고 훈계하며, 자식들에게 나라를 위해 충성하도록 교육하였다. 그 결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아들 동명과 이괄의 난 때 역시 의병을 일으킨 손자 홍원과 더불어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빛나는 가문이 된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1961년 '청주지'에 소개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졌고, 1988년 승전지인 중앙공원에 박춘무 전장기적비가 세워지고, 1992년 건립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박춘무 삼대창의 사적비를 통해 나라를 향한 그의 충성이 후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박춘무 선생과 부모산성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청주성을 탈환한 박춘무가 아양산이라 불리던 지금의 부모산을 점령하였다가 그만 왜군에게 포위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아양산에는 물이 없었다. 왜군의 포위 속에 굶어 죽는 의병들이 속출하게 되어 큰 어려움에 처한 박춘무 선생에게 백발노인이 꿈속에 나타나 소나무를 가르키며 "부하들이 죽어가는데 여기서 잠을 가고 있느냐. 어서 일어나 저 소나무를 뽑으라."는 말을 듣고 꿈에서 깨어나 군사들에게 소나무를 뽑게 하였다.

그러자 거기서 큰물이 솟아났고 사기가 충천한 부하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왜군을 물리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때부터 부모와 같은 은혜를 입었다 해서 아양산을 부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하며, 지금도 그때의 우물인 '모유정(어머니의 젓)' 이 존재한다.

3대에 걸친 목숨을 건 나라사랑 실천의 주인공, 박춘무 선생 집안, 이러한 솔선수범의 모습을 본 의병들이 마음으로 존경하고 일심 단결하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점령당한 성 가운데 처음으로 탈환한 성이 청주성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말하며 특권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고 고귀한 신분일수록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박춘무 선생은 오늘도 우리에게 엄숙하게 전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