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사내의 반성
철없는 사내의 반성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2.10.1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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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가을이 익어가는 하늘이 맑기도 하다. 수정처럼 맑은 하늘에서 제법이나 따가운 햇살이 쏟아진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가는 가을,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 행사에 참가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모처럼 문학행사에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 식사가 이어진 식당에는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떠들썩하니 이야기가 멈추지 않았다. 나 또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에선 주문한 음식이 나오려는 낌새가 없었다. 갑자기 몰려드는 손님들이 제법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조급해지는 마음으로 종업원에게 주문한 음식이 늦는다고 다그쳤다. 죄송하다는 인사가 멈추지 않는 종업원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종업원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낙이었다.

못마땅하게 마음을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이게 뭐냐'는 고함소리가 날아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둘러보니 식탁에서 쌍그렇게 쏘아보는 사내가 머리카락을 내밀었다. 기겁하고 놀라서 받아드는 종업원의 죄송하다는 인사가 멈추지 않았다. 사내가 위생이 어쩌고 하면서 다그치는 고함소리가 제법이나 요란스러웠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종업원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청결이 중요하다. 더구나 음식을 파는 식당이니 청결은 의무와 마찬가지다. 누구라도 자기가 먹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면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중죄인처럼 다그치는 것 또한 볼썽 사나웠다. 사람의 도리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사회가 지구촌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후덕해지는 인심이 사라지는 사회가 안타깝기도 하다.

앞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하찮은 허물을 탓하기 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싸주는 것 또한 아름다운 미덕이다.

식당주인이 한동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에야 식당은 조용해졌다. 나는 저녁을 먹고 일어나며 여전히 분주하게 쫓아다니는 종업원에게 기념품을 내밀었다. 행사장에서 받았던 기념품은 분홍색 수건과 볼펜이었다. 엉겁결에 받아드는 종업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껌뻑거렸다. 괜스레 다그쳐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면서야 싱긋이 웃는 종업원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 주저앉아 나도 모르게 자책의 한숨이 나왔다. 적잖은 나이임에도 어느 사이에 나 역시 조급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지난 일을 후회하면서 자책하는 것 또한 어제 오늘이 아니다. 아직도 철이 없어서인지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에는 후회하는 일이 많기도 하다. 언제나 철이 들는지 모르겠다. 차창에 스쳐가는 것 또한 후회스러운 순간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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