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의 고마움
모기의 고마움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10.1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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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인도의 신화에는 모기를 이렇게 그린다.

마왕과의 전쟁에서 마왕이 죽는다. 그의 시신을 불태웠는데 그 재가루가 모기가 됐다. 가루 하나하나가 모기가 됐으니 엄청난 양일 것이다. 어떤 동물이라도 모기에는 꼼짝없이 피를 뜯기고 만다. 마왕의 분신답게 피를 빨아 먹으며 살고,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괴롭히며, 죽여도 또 죽여도 다시 나온다. 분신(焚身)으로 얻은 분신(分身)들이라!

여름이 좋다지만 모기는 싫다. 아니, 모기 때문에 여름이 싫다는 사람도 많다. 좋은 날씨란 시원하면서도 모기가 없어야 한다. 모기가 많으면 풍광도 무색해진다.

지중해성 기후란 기온이 높지만 건조한 날씨를 가리킨다. 건조하니 땀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땀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땀에 젖지 않는다. 빨래를 해도 언제 했냐싶을 정도로 금세 마른다. 축축하거나 눅눅하지 않으니 살기 좋다.

아무리 그렇다할지라도 거기에 모기가 웽웽 거리면 분위기는 망치고 만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을 수 없으니 감옥과 같아지고 만다.

그러나 지중해는 건조한 환경 덕에 웅덩이가 없어 그런지 모기가 없다. 그러니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고 바캉스의 최적지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모기 없는 곳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슷한 곳으로는 바닷가가 있겠다. 만일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가면, 모기 없는 여름을 바닷바람과 함께 누릴 수 있다. 땅에서 멀수록 좋다. 바람이 셀수록 좋다. 습도는 높아도 모기가 없다. 모기는 이런 점에서 인류의 적이다. 우리의 행복을 빼앗는 무서운 생물이다. 따라서 모기를 없애야 한다. 모기를 멸종시키자! 우리의 사명은 모기 박멸!

아니리라. 정말 아닐 것이다. 일본의 하이쿠에 이런 것이 있다.

"얼마나 운이 좋은 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뭔 소린가? 모기는 죽은 사람에게는 달려들지 않는다. 모기가 나를 문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험이다. 모기가 날 물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신난다. 즐겁다. 이런 이야기다.

나는 내년에도 모기에 물리고 싶고, 내 후년에도, 아니, 백년 후에도 물리고 싶다. 이 말은, 내년도, 내 후년도 건강하게 살며, 백년까지도 더 살고 싶다는 말이 된다. 모기야, 제발 영원히 물어다오.

나를 주어로 말해보자. 나는 자살을 하러 다리 위에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팔목이 따끔했다. 반사적으로 손바닥으로 모기를 잡았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죽으려는 놈이 무슨 피가 아까워 모기를 잡고 있는가? 모기를 잡으려는 것이 곧 삶의 의지를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망칙한 얄궂음 같으니라고! 삶과 죽음의 뒤바뀜, 죽으려는 자와 살려는 자, 죽음 앞에서조차 버리지 못하는 버릇, 남을 죽이더라도 작디작은 아픔을 피하려는 어처구니없음, 한마디로, 유행했던 책 제목과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모기는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모기는 나를 살렸다.

우리나라 날씨 가운데 모기가 없이 선선한 날은 봄가을을 합쳐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밖에서 앉아있기 좋은 날씨 말이다. 이 계절을 가볍게, 정말 가볍게 즐기시길. 모기가 가끔 물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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