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기념식장에서
등단 기념식장에서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10.0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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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일주일 간격으로 등단기념회가 두 번 있었다.

몇 차례 거듭되다 보니 축하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큰 고민이다.

나는 한번 올라가서 내려오면 된다지만 등단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일이기에 소원하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등단하신 분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라 몇 몇 지역 분들에게 전화를 받았다. 화환을 보내려 하는데 축하하는 말을 뭐라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내가 처음으로 초대 받았던 등단기념회가 생각났다.

1995년 제1회 음성여성백일장에 입상한 인연으로 반숙자 선생님께 글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협 선배가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시집 을 함께 출간하는 기념회에 초대받았다.

등단식이란 말이 낯설어 어떻게 축하를 해 줘야 하는지 글공부하는 사람들과 전화를 하고 선생님께 여쭙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기념회 사회를 맡았던 분이 나를 괜찮게 보았던지 시집을 건네주면서 시 낭송 하기를 권했다. 그때 나는 당연히 축하해 주러 왔다면 출간 시집에서 한편을 골라야 했거늘 잘난 체 하느라고 내가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겠다며 하이네의 "아스라의 갈망"이란 시를 낭송했다.

참석했던 사람들의 어이없어 하던 반응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어리석은 내 어딘가에 나도 문학적 소질이 있노라고 자랑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나에게 글 스승은 글을 쓰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 특히 수필은 그 사람이다. 아무리 글이 좋아도 사람이 안 되면 좋은 작가라고 말할 수 없다고 공부할 때마다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등단을 하게 됐다. 그 때도 스승께서는 "니가 등단이라는 화려한 리본을 달았으니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 선생의 손을 떠나 너 혼자 문단으로 들어가야 한다. 너의 글은 너의 얼굴이니 이제부터 치열한 작가장신으로 좋은 글을 쓰기 바란다"라고 당부를 하셨다.

그렇게 수필을 써 온지 어언 20년이 가깝다.

그때 해 주셨던 말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하면서도 늘 잊고 살아왔다.

글을 쓴다는 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어렵다. 내안의 서정은 메말라 버렸고 채우지 않고 퍼내기만 했던 얄팍한 지식은 한계를 드러냈다. 아침 출근길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황금들판이 눈부셨다. 해마다 눈부시게 돌아와 뽐내고 있는 가을의 풍경이 경이로운 것은 메말라가는 가슴과 대조적이기에 더욱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조선의 독서왕 김득신은 책 한권을 1만번씩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둔재로 태어났지만 끝없는 노력으로 59세의 늦은 나이에과거에 급제하고 조선의 시인이자 문장가로 인정을 받았다 한다.

오늘 문득 그의 시 한 구절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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