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이겨낸 포도 수확의 기쁨' 한창
태풍 이겨낸 포도 수확의 기쁨' 한창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9.27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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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향기로운 포도원' 이수안씨
5년전 음성 이주… 포도 농사로 새로운 삶 도전

새벽부터 밤까지 작업장서 땀방울 '즐거운 비명'

추석을 앞두고 이수안씨(56)는 잠시 엉덩이 붙일 새도 없다. 8월부터 본격적인 포도수확기인데다 명절이 겹치면서 포도주문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포도 작업장에서 살다시피하면서 포도 손질하랴, 손님 받으랴 눈코 뜰새없지만 수확의 기쁨에 힘든 것도 잊는다.

"8월부터 포도를 수확하기 시작해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어요. 수확시기를 놓치면 맛도 품질도 떨어지니 부지런히 거둬들여야해요. 얼굴도 옷차림도 천상 농부맞죠?"

부지런하게 두 손을 움직이면서도 화장기없는 수수한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문득 문득 큰 소리로 깔깔 웃는 모습을 보면 쉰 살 넘은 중년 여성은 사라지고 마치 사춘기 소녀같다.

"5년전 연고도 없는 음성에 포도밭을 만들면서 인생에 비상구를 찾는 심정이었어요. 여자 혼자 농사짓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는게 포도농사밖에 없었어요. 울퉁불퉁한 산자락을 포도밭으로 일구면서 힘든 일도 많았죠. 힘들수록 더 크게 웃어요. 속이 시원해지잖아요."

이수안씨는 고단한 일상도 웃음으로 이겨내고 있는 듯했다.

음성으로 이주하며 조성한 포도밭은 이씨에겐 새로운 삶의 도전이었다. 4500평 사과밭을 갈아엎고 포도밭으로 바꾼 것은 포도농사밖에 지을 줄 몰라서였다고 한다. 실제 포도밭 주변에는 온통 복숭아와 사과밭 뿐이다.

"다행인지 몰라도 땅이 점질황토인데다 가섭산 자락의 선선한 날씨는 포도농사에 적합했어요. 당도도 높았어요. 하지만 포도를 수확했는데 팔 곳이 없는거예요. 판로를 찾지 못해 트럭에 포도를 가득 싣고 경기도까지 올라가 팔았죠. 그게 지난해 일입니다."

농사의 어려움은 올 여름으로 이어졌다. 40도를 육박하는 폭염과 수확기를 앞두고 불어닥친 3번의 태풍은 농사꾼들의 일년 땀방울을 헛되게 만드는 위기상황이었다.

"폭염으로 포도알이 터지고, 태풍으로 포도밭의 북쪽은 다 무너졌어요. 온 가족이 나서서 포도밭에 매달렸어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간 중간에 꽂아놓은 막대기가 큰 바람을 갈라놓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태풍 피해로 큰딸과 작은딸, 사위가 발벗고 나서 무너진 포도밭을 정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씨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어려움이 닥쳐도 가족들이 함께 나누고 위로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기에 태풍 피해도 거뜬히 넘길 수 있었다.

"농사일이 다 어렵겠지만 포도농사는 사춘기 여자애처럼 까다롭고 고된 작업이예요. 올해는 특히 폭염과 태풍으로 농삿일은 고됐지만 포도맛이 좋고 주문량이 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난해 경기도에서 포도맛을 보고 음성까지 포도사러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포도농사는 일등'이라는 이씨의 말처럼 포도맛이 입소문나면서 올해는 택배 판매만으로 수확량을 다 소화했다. 먼 길 마다않고 찾아오는 손님에겐 덤도 듬뿍이다. 숙련된 솜씨로 포도를 정성껏 손질해 박스에 담아주는 모습이 영락없는 친정엄마다. 손님도 주인도 이곳에선 모두 주인이다.

"수확한지 3년째인데 올해 가장 큰 수확을 거뒀어요. 더구나 트럭에 싣고 팔러다니지 않고도 전화주문으로 다 팔았으니 큰 소득이죠. 추석 전까지는 밀린 택배 처리로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하지만 명절을 즐겁게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두배로 안겨주듯 주문된 포도를 택배로 보내고 나면 저장고도 머지않아 바닥이 드러난다. 봄부터 부지런히 포도순과 가지를 치며 땀 흘린 농사꾼에겐 이제 달콤한 휴식 시간이다.

황금 같은 추석연휴 동안 포도밭 주인은 무엇을 할까 살짝 궁금해진다.

"모처럼 편하게 휴식도 취하고 농사짓느라 고생한 딸들과 함께 오랫만에 영화를 볼까해요. 가족은 몇 안되지만 즐겁게 명절을 보낼 생각입니다."

소박한 농사꾼의 소박한 바람이 벌써부터 추석의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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