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7.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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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 상 옥

불혹의 문턱을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가끔씩 누군가 던진 무심한 한마디의 말이 상처가 되어 아파할 때가 있다. 그것도 가장 가깝고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 간에 더 그럴 때가 많은 것 같다. 멀리 있는 사람을 향해 던진 돌은 그 사람의 몸을 빗겨갈 수도 있지만 가까이서 던진 돌은 상대편의 정곡을 때릴 수 있기에 비수가 되어 큰 상처를 낼 수밖에...

같은 무게, 같은 크기일지라도 돌을 맞는 순간 받아들이는 이해의 폭으로 아픔의 척도를 분류해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 아량의 편협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상대방의 환경적 조건이나 심리상태에 따라 날아드는 돌덩이가 비수가 될 때도 있지만 어쩔 땐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삶의 정도를 깨우쳐 바로 잡아 주는 주춧돌이 되기도 한다.

삶의 지표가 흔들리고 생활반경이 좁아지며 혜안이 흐려질 때 누군가의 따끔한 충고 한마디가 세월이 지난 후 돌이켜보면 내 삶속에서 얼마나 값진 깨우침이 되었던가. 그러나 살면서 자신의 발전에 큰 역량이 됨을 쉽게 깨닫지 못하고 달콤한 칭찬에만 귀를 세우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인격을 어찌하랴.

살다가 맺은 인연들 중에 누가 인생의 선지자임을 헤아릴 줄 알고 그 사람의 말씀을 깊이 새겨 흩어진 갈피를 잡으려 노력해야 하건만 타협할줄 모르는 아집은 한 해 한 해 나이테의 두께를 더 해갈수록 늘어만 간다.

나이가 들고 세상살이의 연륜이 쌓일수록 소견 또한 너그러워 져야 하건만 자꾸만 좁혀져 가는 자신이 문득문득 보일 때 졸렬해 보이는 인격이 부끄러워진다.

작은 성냄에도 너그러워지고 자애로워질 만도 함직한 연륜이건만 편협한 소견은 평생 고칠 수 없는 고질병처럼 가슴 한구석에서 아집이 되어 굳어져만 있다.

손바닥 보다 작은 이해의 폭으로 덜컹거리고 내가 정한 규칙의 선에서 앞만 보며 세상을 살다 한참 만에 뒤돌아보면 푸석한 삶의 뒤안길이 보인다. 파릇한 풀 한포기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온통 뽀얀 흙먼지만 가득한 빈 들길을 바라보면 허망한 후회와 서글픔만 이는 것은 왜일까.

살다보면 어찌 남들에게 받은 말 한마디가 나의 상처로만 남았겠는가.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얼마나 커다란 돌쩌귀들을 내 이웃의 가슴에 올리며 살아 왔는지.

살면서 맺은 인연들로 인해 얽혀진 마음의 생채기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 만든 아픔일 때가 더 많다는 걸 느낀다. 무심코 던진 말 몇 마디가 근원이 되어 십수 년을 엮어온 인연에 금을 긋고 되돌릴 수 없는 멀찍한 거리를 만들어버린 어리석은 인격은 얼마큼 더 살아야 혜안이 트일런지.

흔히들 각박한 세상, 무미건조한 인심들이라 말하지만 나 자신부터 냉랭함보다는 따뜻한 인정으로 마음을 나누면 가슴이 훈훈해질 것이다. 세상사람들 모두가 사고나 이념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기에 적어도 나만이라도 이제는 세상의 따뜻한 쪽으로 다가가고 싶다. 이런 소견은 세상을 살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부대끼고 얽혀져 지나온 나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절실한 바람이기도 하다. 이제 나 자신부터 단단한 껍질처럼 얽어매던 아집의 틀을 깨고 좀은 헐렁한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그곳에 삶에 지친 누군가가 언제고 달려와 쉴 수 있는 의자 하나 놓아야겠다. 가슴속 쉼터안에 놓인 의자에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나눌 줄 아는 아량의 인연들이 많아질수록 내 삶은 아름다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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