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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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7.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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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바라기
청원 남일초 교사 정병영

개나리가 유난히 고왔던 2004년 4월 보은 모초등학교 3학년 담임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전학 온 녀석이 있었다.

이름은 안상호(가명). 보통은 엄마의 손을 잡고 오건만은 녀석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은 핏줄선 아빠의 커다란 손이었다. 전출·입을 4년 동안 맡았던지라 어느 정도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이혼 후의 전입인 것 같았다. 앳된 모습으로 아빠의 등 뒤에서 담임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여간 귀엽지가 않았다. 시골동네의 후줄근한 교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맹랑하게 물었다.

"선생님, 여기 남자 몇 명이에요"

"선생님, 책상이 왜 6개 밖에 없어요"

그때 우리 반의 책상은 아직 열린 교육의 잔재가 남아 있었던 탓으로 무척 무거운 모둠책상이었다.

'그 녀석, 참 똘방똘방하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빠가 별로 정중하지 않은 태도로 인사를 했다. 녀석도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다음날부터 녀석의 행동은 전날과 딴판으로 행동에 자신감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해 오는 위축감일까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교실에 못 보던 자모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상호 엄마에요."

어렵게 찾아온 것 같았다. 엄마의 눈은 금세 빨갛게 젖었다. 하지만, 평소 상호의 할머니를 통해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신이 어려웠다.

"상호는 30분 전쯤 집에 갔는데, 이를 어쩌죠"

"상호를 집 앞에서는 못 만나기에 무작정 학교로 왔어요. 선생님, 죄송한데요. 상호를 한 번 만 만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114 안내전화를 통해 학교의 위치를 확인한 뒤 아침 일찍 인천서부터 찾아왔다고 했다. 할머니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상호를 위해 엄마를 만나게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상호를 무슨 수로 학교에 오게 할 것인가.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저, 상호의 담임선생님입니다. 상호가 일기장을 놓고 가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친구들하고 놀다온다고 전화가 왔었는데요"

옳다구나 싶어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던 우리 반 녀석들을 모아 특공대를 조직했다. 상금은 칭찬 스티커를 무려 3장이나 주겠다는 것이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운동장에서, "선생님, 찾았어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에서 만나자마자 모자는 끌어안은 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흐느끼는 목소리가 잦아들었을 때쯤 들어가 말했다.

"상호가 엄마의 사랑이 많이 부족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흠뻑 퍼 주고 가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마음을 이해하시는 분은 선생님이시네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 드릴게요. 그럼, 수고하세요."

코끝이 찡했다. 그러면서 세태를 원망했다.

'저런 모습을 보면 부부간에 헤어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아이들은 사랑만 바라보는 사랑바라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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