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의 상록수를 감상하면서
심훈의 상록수를 감상하면서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2.09.1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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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독서의 계절이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한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에 쫓기는 사람이라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도 가끔이나마 잡아드는 책에서도 좋은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이번에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상록수는 1930년대의 이야기로 꾸며지는 작품이다.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면서 대륙침략을 감행하던 시절,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만들고 인적 동원과 물적 수탈을 자행하면서 파쇼적 지배강화를 추진시키던 시기에 농촌계몽활동으로 항거하고, 농촌을 사랑하고 농민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구국교육운동에 발벗고 나섰던 여성운동가를 그린 심훈의 대표작이다.

주인공은 일제 강점기의 신여성이다. 처녀로서의 수줍음과 부끄러움도 버린 채 직접 발을 벗고 논에 들어가 모를 심고 김을 맨다. 농촌부녀자들과 함께 밭을 매면서 구슬땀을 같이 흘리고, 밤에는 한글강습의 야학을 열고 강습소를 운영하는 등 1인 4역 또는 5역을 몸소 실천하였던 여성운동가다. 그녀는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여도 마땅한 교육장이 없는 것을 절감하고 강습소 설립에 열정을 쏟지만, 그것을 시기하는 사람들로 절망한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고생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한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책은 마음에 양식이라고 하지만 한번 보았던 작품을 다시 본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이번에 다시 읽게 된 상록수는 열여섯 살에 처음 읽었다. 그때만 해도 책을 구입해서 본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친구에게 빌려서야 보았던 상록수에 남다른 감동을 받았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문화가 제법이나 많았던 시절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린 나이에도 잔잔한 감동으로 좋은 교훈을 받았던 작품이 상록수였다.

상록수는 1935년 장중첩증(腸重疊症)으로 26세의 짧은 인생을 산 최용신의 실화로 꾸며진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사망하자 천곡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회장으로 천여명 조문객의 애도 속에 강습소가 보이는 곳에 안장하였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를 소재로 작가 심훈이 '상록수'라는 농촌소설을 집필하였으니 상록수의 여주인공(채영신)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작품인 셈이다.

상록수가 실화로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청주문인협회에서 진행하는 문학기행에 참석하고서야 실화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안견 기념관을 둘러보고 필경사에서 해설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펼쳐든 상록수에서 적잖은 감동과 함께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꽃다운 나이에도 남다른 애국심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꽃다운 나이에도 굴하지 않던 주인공의 아름다운 삶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았는지, 나를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과 함께 보내는 상록수에서 또다시 좋은 교훈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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