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나무
늙은 소나무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9.05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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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김 광 규

새마을 회관 앞마당에서

자연보호를 받고 있는

늙은 소나무

시원한 그림자 드리우고

바람의 몸짓 보여주며

백여 년을 변함없이 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송진마저 말라버린 몸통을 보면

뿌리가 아플 때도 되었는데

너의 고달픔 짐작도 못하고 회원들은

시멘트로 밑둥을 싸바르고

주사까지 놓으면서

그냥 서 있으라고 한다

아무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도

늙음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

오래간만에 털썩 주저앉아 너도

한번 쉬고 싶을 것이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기에

몇 백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너의 졸음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백여 년 동안 뜨고 있던

푸른 눈을 감으며

끝내 서서 잠드는구나

가지마다 붉게 시드는 늙은 소나무



※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지나간 뒤 곳곳에서 덩치 큰 나무들이 쓰러지고 꺾여졌다. 뿌리채 뽑힌 괴산의 왕소나무가 그랬고, 아름다운 자태를 잃어가는 보은의 정이품송도, 고려의 전설을 간직한 중앙공원의 압각수가 그랬다. 수백년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이 뚝뚝 바람에 잘려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영원을 기약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한 생을 다하고 땅 위에 널부러진 늙은 소나무, 쓰러진 나무를 일으키는 것도 사람의 욕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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