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심리학, 아니 미학(美學)
나이 듦의 심리학, 아니 미학(美學)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2.09.0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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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에릭슨(E. Erikson)은 정신분석가이며 자아(自我) 심리학자로 인간의 심리 발달을 설명함에 있어 성인기와 노인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에릭슨은 유아기, 아동기만을 강조한 타 심리학자와는 달리 인간의 전 생애를 통한 발달과 변화를 강조했다.

그의 '인간발달의 여덟 단계'(Eight Ages of Man)는 발달 및 성격이론에 독창적인 공헌했는데 여기에는 성인초기, 성인중기, 성숙노인기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발달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성숙노인기는 자아통합(自我統合)의 시기로 인간이 자신의 거의 완성적 조력과 성취에 대해 성찰하는 시기이다. 자아통합은 모든 관점(결혼, 자녀, 손자, 직업, 취미 등)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겸허하게 그러나 확고하게 "나는 만족스럽다"라고 확신하는 능력을 갖게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극단에는 자아통합의 결여로 인생의 쓴맛과 혐오를 느끼는 노인은 인생을 다시 살 수 없다는 후회와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외부 세계로 투사함으로써 그것을 부인하려 한다. 슬픔과 후회가 심하게 되면 우울증, 노인성 정신병, 히포콘드리아증으로 심술궂고 과대망상의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

심리학에 점화효과(priming eff ect)라는 것이 있다.

시간적으로 먼저 제시된 단어가 나중에 제시된 단어 처리에 영향을 주는 현상으로 예를 들어 병원하면 의사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원리이다. 노인, 노화,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의 상당수는 점화효과의 결과다. 즉, 알츠하이머, 노쇠, 치매, 의존, 질병, 죽음, 무능함 등과 같은 단어를 통한 사전 자극이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생기게 한다.

60대가 물건을 선반에 올리다 무거워 떨어뜨렸다. "아휴, 바보같이, 나이가 드니 이 모양이구나." 이와 같은 부정적인 말이 '노인, 나이 들어 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물건을 떨어뜨린 것은 선반이 너무 높아서 일수도 있고 물건이 너무 무거워서 일수도 있는 것이지 꼭 나이가 들어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반면에 성취, 조언, 통달, 현자, 지혜 등과 같은 단어는 '노화,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인 관념으로 사전 자극을 한다.

일본말에 노인의 청춘을 의미하는 말로 '적추(赤秋)'라는 말이 있다. 이 시기는 물질욕, 출세욕 등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시기다. 청춘(靑春)이 이제 만개할 여름을 맞이할 푸른 봄이라면 적추는 겨울이 오기 전 결실의 계절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단풍의 붉은 가을이다. 쓸쓸함과 애련함 또한 노년의 일부임에는 틀림없으나 결실과 풍요가 더 노년에 걸 맞는 이미지로 다가 올 수도 있다.

늙은 벚나무라 꽃피지 않은 봄날 있었던가. 모든 봄나무는 죽기 전까지 꽃핀다.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필자의 연구 관심사가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다시 성인기, 노인기로 이동하고 있다. 어쩌면 나이 들어가면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점화효과로 인한 영향들을 극복하고 싶은 욕구가 학문적 관심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이 듦'에 대한 관심이 사회학적, 심리학적 관점을 넘어 미학적으로 보고 싶은 욕구가 솟아난다. '노인 심리학', '나이 듦의 심리학' 보다 '나이 듦의 미학'이라는 말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미학이라는 단어의 깊은 뜻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느낌이 좋다. 나이 듦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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