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짜장의 추억
메밀짜장의 추억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08.2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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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어제는 기숙사에 있는 작은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길이었다. 옆자리에서 시종일관 떠들어대던 아이가 어제 수업시간에 ’광주민주화 혁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며 엄마는 그때 어디 있었느냐고 묻는다.

“응 엄마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어. 그날도 도청에서 들리는 데모 소리를 들으며 불안한 마음으로 수업을 받고 있었지. 2교시가 끝나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체조를 했는데 여느 때처럼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 나갔다. 그때 어디서 날아 왔는지 헬리콥터가 머리 위를 낮게 선회하며 빨리 흩어지라고 방송을 했단다. 놀란 선생님들은 우리가 다칠까 봐 교실로 들어가라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또 다시 후다닥 교실로 들어갔다. 4교시가 끝나고 휴교조치가 내려졌었지. 그 날이 아마 5월 18일이었던가…”

한참을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여고시절 이야기에 빠져 들어간다. 그 시절 추억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잘 가는 음식점은 대부분 충장로에 밀집해 있었다. 학교에서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시내로 쏟아져 들어가 수다를 떨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다. 교복을 입었기 때문에 선생님들께 자주 들켰고 아침조회 시간마다 혼이 나기도 했다.

특별히 자주 먹은 것은 ‘메밀짜장’과 ‘상추튀김’이었다. 메밀짜장은 메밀국수에 짜장을 얹어 나오는 것인데 얼마나 맛있던지 토요일만 되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먹으러 다니고는 했다. 실컷 먹었어도 시내를 다니면서 놀다 보면 배가 고프기 마련이고 그럴 때는 뒷골목에 있는 상추튀김 집에 들어가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상추튀김은 상추에 튀김을 얹고 그 위에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간장을 끼얹어 싸먹는데 지금 생각해도 환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의 맛이다. 아득히 꿈 많던 여고시절 동무들과 깔깔거리며 다니다가 먹은 음식이라 더 맛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게 있어 최초로 음식에 대한 기억이라면 8살 때다. 치과에 가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나에게 아버지는 라면을 사주신다고 하면서 데리고 가셨다. 이를 뽑아야 하는 치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얼결에 가서 진료를 마쳤다. 아버지는 약속대로 라면을 사 주셨는데 아직도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기억한다. 이를 치료한 뒤에 먹었던 만큼 맛이 없었을 것도 같았는데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의아한 일이었으나 아마도 아버지가 사주신 최초의 음식이라는 데서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좀 더 지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친정 엄마와 함께 먹은 콩국수도 잊지 못할 맛이다. 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이번에도 피부과 치료를 받고 읍내 둥그런 식탁위에서 먹었던 콩국수의 맛을 늘 내 입안에서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라면을 먹거나 콩국수를 먹을 때마다 그 때 생각이 나면서 오롯이 추억에 젖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은 추억’이라고 얘기하나 보다. 내 말을 듣던 아이는 수능이 끝나면 엄마와 함께 광주에 가서 그 맛을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마하고 약속을 했다. 아이에게 나도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먼 훗날 아이가 나만큼 나이를 먹으면 광주로 음식기행을 떠났던 기억을 자신의 딸에게 말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진정 아름답고 멋진 추억의 대물림이다. 내가 먹었던 것을 몇 십 년이 지난 후 딸이 먹는다는 것, 아니 그 때 여고생 시절의 오붓한 꿈과 추억을 딸과 함께 공유하며 시간의 강을 질러가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다.

이런저런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무극이다. 이제 도착하면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할 텐데, 모처럼 집에 오는 딸에게 또 뭘 해 먹여야 할지 구상해 본다. ‘음식은 추억’이라고 무릎을 치게 될 만치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러운 메뉴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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