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
칠보산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08.2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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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방학이 끝나가는 주말 칠보산을 찾았다. 모처럼 남편과 가는 산행이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일정이어서 마음의 부담이 생겼다. 몇 몇 부인들은 그냥 차에 남아 시간을 보낼 모양이었다. 난 등산화 끈을 조이고 햇살이 따갑게 비치는 노란 마타리가 핀 신작로를 따라 칠보산 진입로에 들어섰다.

산을 오르다 보니 몇 해 전 지인들과 함께 산행했던 곳이었다. 겁부터 났기 때문에 조심조심 스틱을 떼어놓으며 걸어 올랐다. 장마가 그친 후 며칠 되지 않아 계곡물은 하얀 물보라와 함께 맑게 흐르고 있었다.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숨이 막혀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한발자욱도 뗄 수 없을 만큼 숨이 찼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가웠다.

늘 산에 가면 앞잡이를 하는 남편이 나를 앞세우고 가려니 얼마나 속이 탈까. 있는 힘을 다해 걷지만 진전이 없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나 같은 동료가 뒤에 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내려와 개울물에 발을 담갔다.

동지가 생겨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계곡의 돌에 앉아 발을 담그고 신선처럼 시간을 보냈다. 발끝부터 전해오는 시원함이 온몸의 땀을 식혔다. 배낭에 있는 풋사과를 꺼내 나누어 먹으며 고개를 드니 잡목림 푸른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조금 후엔 우리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뒤쳐져 그곳에 도착했다. 그들에게 남은 사과 한 개를 주고 일어나 등산화를 손에 들고 맨발로 산길을 걸었다. 어떤 곳은 진흙이라 촉감이 매끈거리고, 비에 쓸려나가 왕모래가 보이는 곳은 발바닥이 아팠다. 그러나 오랜만에 걸어보는 산길이기에 마음은 더 상쾌했다. 땅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모든 잔병들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십오 분 남�!構� 산길을 내려오니 세찬 물소리와 돌이 가득한 넓은 계곡이 펼쳐졌다. 바지를 허벅지 까지 걷고 돌에 서서 세차게 흐르는 물에 다리 물맞사지를 했다. 초록으로 가득한 숲속. 흐르는 물과 함께 삶의 잡다한 생각들을 모두 씻어내고 있는듯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연과의 교감인지 이런 감정들을 행복이라 말하나 보다. 젊은 시절엔 등산가서 정상을 가지 않으면 그 산을 다녀왔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정상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욕심도 거의 사라졌다.

자연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말없이 품어준다. 시기와 질투도 없으며 순결한 소녀처럼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맑은 샘물같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해주고 푸른 에너지를 공급하여 새힘을 전해준다. 값도 없이 많은 것들로 피곤해진 영혼을 적셔주고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처음 올라갈 때 그 피로는 다 어디로 갔는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일곱 가지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칠보산, 정상은 오르지 못했지만 자연의 큰 선물을 가득 안고 여유 있게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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