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순위
메달순위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8.2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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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올림픽 메달순위를 매기는 공정한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 '공정' 이라는 말을 썼지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떻게 순위를 정해야 과연 정당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교육적일까' 물어보자는 말이다.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세계 속에 우뚝 서고 자신에게 의젓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메달을 집계해야 하나? 우리는 금메달 개수를 우선으로 친다. 금메달 수에 무조건 근거해 국가순위를 매긴다. 은메달과 동메달 수는 관계없다. 그러나 메달집계를 할 때 다르게 할 수도 있다. 금, 은, 동을 구별하지 않고 메달총수로 따지는 것이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메달총수로 따지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우리의 사고는 습관처럼 이렇게 최고지향적이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정도면 세계적 수준이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다못해 옆 사람에 따라 넘어져 재수 없게 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자전거나 장애물달리기에서 그런 일은 벌어진다.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는 경우도 있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정말 크다고 할 수 있다. 2등한 유도선수가 1등을 하면서 한 말이 떠오른다. "죽기 살기로 했을 때는 졌어요. 죽기로 하니 이겼어요. 이게 정답입니다." 같은 선수와의 경기에서 한 번은 지고 한 번은 이겼으니,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진 선수의 포용도 보기 좋았다. 저 번 올림픽에서는 내가 금메달 네가 은메달, 이 번 올림픽에서는 네가 금메달 내가 은메달,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이렇듯 1, 2등은 이렇게 언제고 순위가 바뀔 수 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라. 절벽 사이로 넘어갈 때 건너가면 건너가고 못 건너가면 못 건너가는 거다. 높은 꼭대기에서 한 발 앞으로 가는 놈이 있고 가지 못하는 놈이 있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그만큼 크다.

백척간두에 진일보라는 말은 본디 불교에서 쓰는 말이다. 깨달으려면 죽음을 무릅쓰고 한발 앞으로 가야한다.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일컫는다.

과연 운동도 그럴까? 신체의 차이도 있고, 나이의 차이도 있고, 올림픽이라는 4년의 주기도 있고. 그래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며, 겸양하는 말이 바로 '운이 좋았다'는 것 아닌가?

이렇듯 한국사회의 강한 서열주의를 나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메달집계방식이다. 대학도 서열을 매겨야 하고, 회사도 순위를 정해야 하고, 학생도 10등급으로 나눈다. 예전의 '수우미양가'라는 5등급도 사라지고, '가나다'라는 3등급도 보기 힘들다. 서양식제도를 도입해서 ABCDF로 나누는 대학이 조금 나은 듯하지만, 학교마다 A+, A0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A+, A0, A-로 나누고 만다. 그렇게 나누면 12등급이다.

2012년 올림픽 금메달로 따지면 우리는 5위였지만 메달총수로 따지만 9위로 밀려난다. 독일, 프랑스, 호주, 일본은 은메달과 동메달이 우리보다 훨씬 많아 순위가 우리보다 앞선다.

엉터리 같은 내 삶에는 금메달보다는 동메달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하는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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