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공간(personal space)과 관계성
개인공간(personal space)과 관계성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2.08.2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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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5개의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에서 누군가 2번 소변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뒤에 들어오는 사람은 몇 번 소변기를 사용할까? 생리적 현상을 따른다면 문 바로 옆에 있는 1번 소변기를 사용할 확률이 가장 높다. 그러나 실제로는 4, 5번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지금 남자 화장실을 가보든지, 아니면 직접 실험을 해봐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Hall)이 소개한 '개인공간(personal space)' 개념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의 일정한 공간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이 일정한 거리 이내로 접근해 오면 긴장감과 거부감, 심지어 생존의 위협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만의 공간을 유지하고 싶은 이런 심리는 앞서 예를 든 화장실에서도 유효하다.

자동차(자가용)는 현대사회에서 유용한 이동수단이기도 하지만, 개인공간의 침범을 경계하는 현대인에게 훌륭한 퍼스널 스페이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자동차 산업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공간은 문화, 환경,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홀은 4단계로 개인공간을 구분 지었다.

△밀접한 거리(15cm-46cm) : 자연스런 스킨십이 가능한 연인의 거리로, 자기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사적인 기본 공간이다.

△개인적 거리(46cm-1.2m) : 경계심이 없는 친한 친구와 대화할 때의 거리로 팔 길이와 연관이 있다.

△사회적 거리(1.2m-3.6m) : 사무적인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거리로 회의실의 테이블 크기 등이 이 거리와 관계가 있다.

△공적인 거리(3.6m 이상) : 연설, 강연 등이 이루어지는 거리로 친밀감과는 거리가 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사람이 자신 쪽으로 접근해오면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반대로 돌리게 된다. 더 복잡해져 몸과 몸이 접촉하는 상태가 되면, 팔짱을 끼거나 차 안의 광고, 핸드폰에 집중한다. 자기의 '개인공간'에 다른 사람이 침입해 있는 불쾌감을 참고 있는 것이다.

화장을 잘했거나 유행하는 옷을 입은 여성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좁아지며 대인적 적극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너무 매력적인 사람의 경우 퍼스널 스페이스가 커져 가까이 가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정장보다는 캐주얼 복장이 퍼스널 스페이스를 작게 한다. 대개 동양 사람이 서구 사람보다, 여자 보다는 남자가,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도시 사람보다는 시골사람의 개인공간이 더 넓다. 청소년 시기를 기점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개인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특성이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 자리가 한 개 생겼을 때 용감하게 앉는 사람의 나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너를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여우는 "우선 내 곁에서 좀 떨어져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그리고 넌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아도 돼."라고 알려준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퍼스널 스페이스'를 줄여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음에 있어 상대가 어떤 거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적절한 개인공간을 유지할 때 관계성은 한결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자. 옆 사람과의 거리는? 그 사람과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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