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사랑
별들의 사랑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8.2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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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올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가뭄에, 무더위에, 폭우에 참으로 모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 시제인 그 여름이 되려 하고 있으니 시원섭섭이라는 말이 이참에 딱 어울린다. 삼복(三伏)을 품은 음력 유월이 지나고 이제는 칠석이 들어 있는 칠월이다. 칠월칠석(七月七夕)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으니,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그들이다. 이들은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하늘에 실재하는 별들의 이름이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떨어져 있어, 만나지는 못하고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숙명적 비극이 이 별들이, 이 캐릭터들이 통시적으로 던지는 메시지이다. 한(漢)의 메이청(枚乘)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에도 이들은 나타난다.

초초牽牛星(초초견우성) : 견우의 별은 아득히 멀고

皎皎河漢女(교교하한녀) : 은하수 건너 아가씨 곱기도 하여라

纖纖擢素手(섬섬탁소수) : 들어 올린 하얀 손 곱디곱고

札札弄機저(찰찰롱기저) : 능숙하게 돌아가는 베틀 소리 요란하다

終日不成章(종일불성장) : 종일토록 베를 짰건만 온전히 되지 않고

泣涕零如雨(읍체령여우) : 눈물이 비처럼 떨어지네

河漢淸且淺(하한청차천) : 은하수 물은 맑은 데다 얕기도 한데

相去復幾許(상거부기허) : 떨어진 거리 또 얼마나 되랴?

盈盈一水間(영영일수간) : 물 하나 사이로 어여쁜 님 있지만

맥맥不得語(맥맥불득어) : 물끄러미 바라만 볼뿐, 말을 건넬 수 없다네

문면의 제한이 철저한 한시(漢詩)에서 같은 글자를 반복해 쓰는 일은 잘 없지만, 이 점에 있어서 이 시는 철저히 예외다. 전부 여섯 번의 첩자(疊字)가 운용이 되고 있으면서도 이 시가 단조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묘사의 생동감 때문일 것이다. 특히 견우(牽牛)는 원거리에 고정시킨 채, 그의 파트너인 직녀(織女)의 모습은 근거리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곱게 꾸민 얼굴(皎皎), 가늘고 고운 손(纖纖), 잘 꾸민 모습(盈盈)은 견우(牽牛)를 향한 직녀(織女)의 간절한 그리움이 투영된 시어(詩語)들이다.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행위는 기다림의 인내(忍耐)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베틀에 앉은 여인은 베를 짜는 대신 기다리는 님에 대한 그리움의 고통을 베틀 소리에 삭여낸다. 그래서 베는 짜이지 않고, 눈물만 비처럼 흘러 내리는 것이다. 이별한 사람들이 만나지 못하는 데는 거리가 멀어서라든지, 강으로 막혀서라든지, 오갈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으면 차라리 좋다. 더 슬픈 것은 가까이 있으면서, 산과 강으로 막혀 있지도 않으면서,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은하수를 강에 빗대는 것은 중국시에서 흔한 일이다. 시인은 은하수를 맑고도 얕아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강으로 묘사하고 있다. 직녀(織女)는 매일같이 곱게 차려 입고 은하수 강가에 나와서 견우(牽牛)를 기다리건만, 견우(牽牛)는 그런 직녀(織女)를 바라다 볼 뿐, 말 한마디를 건네지 않는다. 무언가 말 못할 비극적 사연과 함께 직녀(織女)의 고운 자태가 슬픔을 응축한다. 일 년에 한번 칠월칠석(七月七夕)에 까막까치(烏鵲)가 다리를 만들어 만나게 한다는 일반적 스토리와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바라만 본 채, 만나지 못한다면 과연 이것이 사랑일 수 있을까 감각과 자극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찌든 영혼들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영겁의 세월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떠 있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두 별에게는 이보다 더 애틋한 사랑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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