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도
세상에 이런 일도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8.19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여행안내서에는 인천발 중국 서안 행 비행기 출발시각이 오전 8시35분으로 되어 있었지만, 출발 2시간30분 전인 오전 6시5분까지 3층 국제선 27번 카운터에 도착해 탑승수속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제천에서 당일 아침 출발해 그 시각을 맞추려면 새벽 2시에는 기상해 부산을 떨어야 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여행길이 아니라 고행길이 될 것 같아 전날 오후 아내와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차를 운전했다.

무더위가 절정에 오른 휴가 시즌이라 차 안도 가마솥 같았다. 그래도 4박5일의 해외여행에 들떠 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기쁘기만 했다. 이번 여행은 3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역전의 용사, 군대 동기 다섯 명의 부부동반 '신나 軍' 중국여행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호텔을 찾아갔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물론 객실 사전예약은 하지 않았다. 웬걸 수백 개가 넘는 객실이 모두 예약이 되어 있다고 했다.

난감했다. 인근의 기타 숙박시설은 검색을 해보지 않아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상가에 들렸더니 친절한 아주머니 한 분이 호텔 이름을 알려주어 내비게이션 검색을 마치고 15분을 달려 덕교동이란 곳에 있는 P 호텔을 찾아갔다.

다행히 빈방이 있어 체크인하고 7층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하여 대단히 피곤하고 내일 아침 적어도 오전 5시에는 기상을 해야 하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비몽사몽 간에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천정에서 시뻘건 섬광이 번쩍하여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내 메케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뿌연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찼다. 순식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나?" 난생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황당할 뿐이었다.

얼른 두 손으로 더듬어 벽에 붙어 있는 손전등을 꺼내 들고 아내와 함께 방문을 열고 내의만 걸친 채 복도로 나왔다.

다행히 문을 열게 되니 연기가 빠지고 더 이상의 화재는 진행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니 십년감수는 된 듯하였다. 하마터면 바비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정도면 화재탐지기가 작동되어야 하는데 먹통이었다.

119에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다 카운터에 연락하였더니 직원이 올라와 손전등으로 그을린 곳을 비춰보며 에어컨 과열로 인한 누전 같다며 방을 바꿔 준다고 하였다.

그것이야 당연하고, 호텔 측에서 야밤에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어 한소리 할까 하다가 참았다. 오히려 내가 새벽에 우리 때문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주객전도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현직에 있을 때 나는 1년에 두 번 대형 화재를 당해 큰 고역을 치른 적이 있다.

그때의 일로 나는 화재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해 졌다. 외지에 나가 숙박할 기회가 있을 때는 습관적으로 문에 붙어 있는 대피도를 눈여겨 머릿속에 그려보며 특히 방안의 비상손전등은 반듯이 꺼내 작동시켜 본다. 학교에서 방화관리자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려 노력하였던 것이 그래도 이번 화재 시 대피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던 같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