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 일등 지상주의… 야박한 풍요로움
물질만능… 일등 지상주의… 야박한 풍요로움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2.08.1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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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 상실된 사회-사람이 그립다 지상토론
사람이 그립다. 친구가 그립다.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냄새가 그리울때가 있다.

화살같이 빠른 세상이지만 어느 한자락에서 햇살 따뜻한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같이 졸아줄 수 있는 사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된장 한 뚝배기에 숟가락 담그며 같이 밥 먹어줄 사람, 친구의 자취방에서 냄새나는 이불을 덮고도 괜찮다 위로하며 정을 나눌 친구, 묵혀둔 옛 이야기 꺼내가며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친구, 내가 한술 손해보더라도 한 술 더 건넬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친구가 그립다. 온기 없이 철두철미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 냄새가 너무도 그리운 세태가 오늘이다. 40대·50·60대 그들이 더욱 절절하게 느끼는 세태다. 세대별 남녀 6명이 충청타임즈가 마련한 '기본이 상실된 사회-사람이 그립다' 지상토론을 벌였다

◈ 다르다는 이유로 흑백논리 재단

김기원 (60대) 시인·문화비평가

사람들이 넘쳐 난다. 해수욕장이나 유원지나 터미널이나 공합 대합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빈다. 놀고 쉬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속에 외딴섬처럼 내가 있다. 무심천변에도 공원에도 시장에도 시위 현장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속에 역시 방관자처럼 내가 있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일터로 배움터로 나간다. 가족보다 더 긴 시간들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 속에 검투사 같은 내가 있다.

해가 지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나 역시 집으로 회귀한다. 그 집이 하우스인지 홈인지 헷갈리는 타인 같은 내가 있다.

정말 사람이 그립다. 사람 냄새가 나는 풋풋한 사람이 그립다. 외딴섬도 방관자도 검투사도 타인도 아닌 너와 나이며 우리이며 배려자이며 참 나인 따뜻한 사람들이 그립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

저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생활환경도 다르고 꿈도 생각도 다르다. 그 다름과 차이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남과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되는데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고 차이나면 적대시 한다. 다름과 차이는 악과 선이 아니며 옳고 그름이 아닌데 이를 이분법으로 흑백논리로 재단하려 하니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한다.

일회용 음식과 일회용 도구가 삶을 지배한다. 순애보 같은 사랑은 박물관에 박제된 채 일회용 사랑이 넘쳐난다. 좋으면 몇 번 더 쓰고 아니면 마는 식의 인관 관계가 횡횡하다 보니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 친구 간에 우정도 선후배 간의 의리도 사제 간의 정도 그 농도를 잴 수 없을 만큼 엷어져 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일등 지상주의와 기계문명으로 인해 감성을 지피는 가슴은 작아지고 이성을 저장하는 머리만 커져가고 있음이다.

34년간 공직에 몸 담았다가 퇴직 한지 8개월이 되어 간다. 공직 생활 중에 간이라도 빼줄 듯이 따르며 실리를 좇던 후배들은 소식이 없는데, 내게 덕본 일 없는 우직했던 후배들에게서 안부 전화가 온다. 공사생활을 하면서 사람 욕심이 많아 정 주고 마음 주고 시간 주며 살았는데 공허하기 그지없다.

불신과 배신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남은 삶 나도 누구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 채 태우는 연탄재처럼 촛불처럼 살고자 한다. 그리하여 마냥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리라.

◈ 앞만보고 산 세상 외딴섬으로 남다

이명숙 (60대) 충북도교육청 교육국장

퇴직을 일 년 정도 남은 요즘 은퇴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남들은 "연금이 나오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지만 속 모를 얘기다.

할 일이 없어 긴장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과 출가를 시키지 못한 자녀에 대한 걱정이 많다.

올해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60~70년대 고등학교 입학은 꿈꾸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라 초등학교 졸업 후 생계전선에 뛰어든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인지 동창회 모임에서 나의 존재는 외딴 섬 같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수십 년 만에 얼굴을 내민 탓도 있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잦은 왕래가 있어서인지 허물이 없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은퇴 후 만나고 싶어 연락처를 건넸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만난 친구는 평생을 간다는 말이 있는데 후회스럽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을 찾지 않은 나에 대한 원망이 크다.

지금은 현직에 있다 보니 편한 자리에 가서도 조심스럽다. 나의 말 한 마디가 교육청 입장으로 변질할까 봐 언제부턴가 불참하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낄 수가 없는 처지다. 은퇴 후 만날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다.

환갑을 넘기고 보니 요즘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과연 행복한지 자문해 본다.

내 부모는 자식이 배곯지 않고 많이 배워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셨다. 나는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고 성공해서 효도하고 싶은 마음으로 60년을 버텼다. 과연 내 자식들은 무슨 힘으로 60을 살지 걱정이다.

가난했지만,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정으로 산 세월이 그립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 폭염 탓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동네 어른 몇 분은 어머니를 가마에 태우고 십리가 넘는 읍내 병원에 입원시켜 살려 주셨다. 어머니가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동네 할머니 한 분은 아무런 보수 없이 병원에서 같이 지내며 간호해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국수를 좋아하는 딸이 입맛이 없다고 하면 어머니는 밥 한 공기를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국수를 얻어오셨다. 국수 삶은 집은 으레 우리 집으로 국수 사발을 들고 마실을 오셨다.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떡 한 첨 돌릴 일 없는 세상. 과연 나는 사람 냄새나는 삶을 사는지 자문해 본다.

◈ '나보다 우리' 사회의식 전환 시급

남기헌 (50대) 충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인류의 태동은 사람이 사람구실을 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하는 사명을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면 크고 작은 삶의 경쟁관계에서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인 인간관계가 늘어가고 있으니 서글프다.

특히 서구문물의 영향으로 우리의 전통풍습이 여러 분야에서 변질되고 있으며, 일등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고 보니 인간성도 상실되어가고 있어, 나눔과 배려의 이웃사촌문화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대가 변하니 사회풍습이나 사람의 마음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세대의 사람들은 사람다운 삶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50대의 우리인생은 농업사회의 초년시절과 산업사회의 중등시절, 정보화 사회의 장년시절을 경험하면서 삶을 살아오다보니, 어려운 삶의 환경을 극복하고, 늘 푸르른 마음과 배려의 정신으로 자기 보다는 가족을 위해, 가족보다는 지역사회를 위해, 지역사회보다는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으로 일관해 왔기에 요즘세상의 행태를 보면 어느 구석 하나 만족이란 찾아볼 수가 없어 보일 듯싶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시대변화를 읽고 사회변화를 창출하려는 시민사회가 있으니 다행이다.

또한 나눔과 배려, 상호부조의 한국전통사상을 그리워하는 시민이 늘어가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이다.

법을 내세우기 보다는 상식과 소통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이 있기에 우리사회의 건강함을 이르켜 세울 분명한 미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른다운 어른이 존재하는 사회, 가정이 든든한 사회, 사회의 공공성이 존중되는 사회, 희망과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청소년이 있는 사회, 노력하면 미래를 보장받는 사회를 우리는 희망한다.

이러한 정의와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는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행일치, 나보다도 우리를 생각하는 더불어 함께의 사회문화의식,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 그것이다.

◈ 외로운 50대 지금도 사랑하고 싶다

박상옥 (50대) 다정갤러리 대표

한국의 50대를 규정짓는 단어는 외로움이다. 기를 쓰고 돈 벌어서 아이들 뒷바라지 해 주니, 취직, 결혼, 군대 등의 명목으로 곁을 떠나고, 영원히 내 편이던 부모님도 떠나고, 50대는 생의 쓸쓸함을 몸으로 견디는 세대다.

더군다나 변변히 준비한 노후자금도 없다면 외로움과 불안이 동시에 겹쳐오고, 모두를 사랑하고도 외로움만 남았다고 느끼는 50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더 이상 지성미가 묻어날 수 없는 나이. 빛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나이. '쉰 냄새가 나서 쉰'이라는 웃음의 소리가 정말 듣기 싫은 세대다.

공자(孔子)가 50을 두고, 인생이나 하늘의 뜻을 알았다는 '知天命'이란 말을 남겼다지만, 이것이 무조건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며, 그만 쉬라는 뜻도 아닐 텐데.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으면서, 떠안은 외로움과 공허감 때문에 우울증이 가장 많은, 하늘의 뜻을 무조건 거부하고 싶은 세대가 오십대다.

수명이 길어져 100세까지 산다는데, 몸으로 치면 가장 중요한 허리 부분의 나이가 50대이니, 오십대는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서 민주화를 이루어낸 세대이며, I.M.F를 극복한 세대이며, 지금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체험한 것을 밑거름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세대이다.

이런 시기에 대선 주자들 평균나이가 오십대이니, 그들의 외양이 진보이건 보수이건, 같은 역사와 삶을 살아온 이 땅의 중요한 허리인, 나도 희망의 세대이고 싶다.

차 한 잔이나, 술 한 잔을 마주하고 하염없이 앉아있는 시간이면, '사랑했었다' 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에 목말라 하는 오십대여!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다, 그 눈에 외로움이 가득하다면, 슬쩍 어깨 한 번 내어줄 일이다.

웬만큼 지독한일이 아니면 눈물도 안 나올 나이라지만, 말없이 끌어안고 한번 울어줄 일이다.

후회만 하고 있기엔 서러움이 앞서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어진, 언제라도 달려와 외로움을 함께 마셔줄 이름을 많이 만들 일이다. 그런 사람이 그리워지는 세태다.

◈ '나눔·베품' 물질만능주의 탈피를

임헌경 (40대) 충북도의회 의원

현대인은 갈수록 물질 만능에 의해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출·퇴근길 차안에서, 환승역에서, 걸어가면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모두들 일년 내내 바쁘다.

문제는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고도의 산업화로 경제 권력이 물질의 풍요를 독차지하는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본을 지향하고, 동경하도록 만들었다. 분야별 양극화도 낳고 있다.

우리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언제나 쫓기 듯 살아간다.

경제, 자녀, 교육, 노후 등의 문제에 얽매여 있다. 이에 인간 본질을 생각하고, 삶을 사고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음식 선택에도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듯이 무엇이든 빨라야 직성이 풀린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Maslow)의 욕구 5단계 중 현대인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욕구는 '안전의 욕구'라 본다.

핵가족화에 따른 개인주의, 이기주의 팽배로 남을 배려하거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약해지는 현실에서 각종 안전의 욕구는 커지고 있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를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희소 자원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최적의 배분을 이룰 것인가, 또 양극화된 현실을 해소해 어떻게 균형을 되돌릴 것인가를 각자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혁신도 찾아야 하며 남북 관계까지를 감안해 그동안의 불균형 성장이 아닌 진보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 이런 문제들의 해법이라고 판단된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나눔, 베품, 보살핌 등 이런 가치들을 실현해 나감으로써 물질 만능주의에 인식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인연의 고리를 유지시키는 것을 배제한 채 자신의 이익과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인간다운 삶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 경제적 여건-마음의 풍요는 별개

황미영 (40대) 충북도 청소년종합지원센터장

이정전 교수의 '우리는 행복한가'란 책을 보면 다양한 행복의 조건이 나온다. 이 중 많은 사람들은 돈, 즉 경제적 여건이 행복의 조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력이 꼭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소득수준 향상이 국민의 행복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에도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학설까지 제기됐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여건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애정 결핍과 물질에 빠진 현대인의 각박한 삶과 연관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심각한 것은 이들이 '사람', '인간미', '정'이란 단어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정과 사랑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접어둔지 오래다.

이 교수는 책에서 행복의 조건 중 '인간성 회복'을 행복의 주요 요소로 꼽고 있다. 남과 비교해 스스로 불행해 하는 것을 지양하고, 대중소비 사회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말라는 충고다. 나아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하지만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음에 행복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고민을 함께 나누며 쓴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고 믿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사실에 대한 나의 반응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물질을 우선시하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정말로 불행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물질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이웃 주민 등과 함께 생활하며 정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사람 냄새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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