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품격
경기의 품격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8.0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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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올림픽 경기에서 자국끼리 맞붙지 않으려고 상대방에게 지려는 경기를 한 팀들이 무더기로 실격을 당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과연 무엇이 옳은가?

'경기는 이기려 하는 것이다. 메달도 국가별로 계산된다. 그러므로 자국팀과 맞붙지 않으려고 태만한 경기를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이 맞는가?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첫째,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데, 고의적으로 지려고 했다. 따라서 그것은 참된 경기가 아니기에 실격이다.

둘째, 경기는 이기려고 하며, 승패는 국가별로 나누어지므로, 자국팀에게 일부러 져주더라도 궁극적으로 자국이 이길 수만 있다면 져줄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경기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다.

셋째, 경기는 이기려고 할뿐만 아니라 속임수(feint)도 많다. '위장 공격'을 처벌하는 것은 유도뿐이다. 보통의 경기에서 거짓 동작을 하거나 시간을 끄는 것은 일반적이기 때문에, 따라서 경기 전체를 지려고 한다 해서 잘못된 것은 없다.

넷째, 경기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없게 만드는 도망가기, 시간 끌기, 할리우드 액션으로 불리는 과장된 동작은 모두 처벌대상이다. 따라서 고의성을 갖고 재미없게 만들었다면, 그 경기는 몰수되어야 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 참으로 모호하다. 네 번째 것은 효용성을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앞의 논리와는 다른 층차를 보이지만, 현대의 진리기준에도 실용주의가 태도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다. 이 논리에 따르면, '재미없는 경기는 경기가 아니다'.

세 번째 것은 그 속임수가 오히려 경기의 일부분이라면 모르겠지만, 경기 전체를 속임수로 만들 수는 없다고 반론할 수 있겠다. 공을 앞으로 보내려다 옆으로 빼거나, 칼로 오른 쪽을 찌르려다 위로 찌르는 것은 경기의 일부분이며, 그것을 빼놓는다면 단순한 기록경기가 되기 쉽다. 그럼에도 경기 그 자체가 속임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속이기 시작하다가는 선수도 속이고, 심판도 속이고, 관중도 속이게 된다.

두 번째 것은 아무리 국가별로 나누어지더라도 한 국가가 금, 은, 동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토너먼트의 경우에는 국가와 팀의 이익이 상충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이런 문제가 따른다.

첫 번째 것은 성실성의 원칙에 해당된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논리에도 고민은 따르고 문제는 남는다. 몇몇 동양 종목이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이하지만, 결국은 실용적 기준에 따라 재미없는 경기를 하면 제재 받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어려서 나는 '경기에서 속임수는 옳은가'하고 오랜 시간 고민했었다. 스포츠맨 쉽이라면서 페인트 모션을 가르치는 것이 이상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인들은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서서 싸워 많은 사람이 죽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우스꽝스럽지만 당시로서는 생명과도 바꾸지 못할 신사의 도리였다.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품위고 격조다. 경기도 어렵지만 품격을 지키기는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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