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경험과 심리적 건강
정상경험과 심리적 건강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2.08.0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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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25년 전 억수리의 늦가을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고, 계곡은 한산하고 맑기 그지없었다. 시국사건으로 월악산 깊은 골 억수리에서 6개월째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배고픔, 외로움, 막막함으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가던 오후. 무작정 억수 계곡 속으로 걷고 걷다가 훌훌 옷을 벗어 버리고 풍덩 계곡에 몸을 담갔다. 참을 수 없는 한기를 느껴 따뜻한 바위에 올라 몸을 말리다 눈을 뜻을 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은 채. 아~,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나무들과 새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은 자연의 일부분이었고, 그냥 눈물이 흘렀다. '정상경험'이었다.

제3세력의 심리학, 인본주의 심리학을 창도한 매슬로우(A. H. Masl ow)는, 정상경험(頂相經驗·peak experience)이란 깊은 몰입과 황홀감을 수반하는 개인의 인생에서 최고로 고양된 만족과 환희의 체험이라고 했다. 이는 자기실현자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보았다. 정상경험은 강렬한 애정, 예술과 음악과의 만남,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체험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최고 절정의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정상경험은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무아지경으로 정신이 한곳에 온통 쏠려 자신을 잊는 경지를 말한다.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이다.'도(道)를 듣는 것'은 어떠한 형태이든 정상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정상경험을 많이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정상경험을 많이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삶의 만족감과 성취도가 높았다. 특히 정상경험자는 미경험자보다 시나 음악, 철학 등에 심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정상경험이 심리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심리적인 병이 제거되고, 자신을 보다 건강한 양식으로 보고, 타인을 보는 견해와 타인과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온다. 세계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며, 창의성, 표현력과 자발성이 표출되고, 궁극적으로 인생을 넓고 값진 것으로 보게 된다.'

매슬로우는 자기실현에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15가지를 제시했다.

그 중 상위 5가지를 소개한다. 공격적이지 않은 유머를 즐긴다. 자신과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좋아한다. 주위의 사물을 평범한 것일지라도 놀라움으로 바라볼 수 있는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 창의적이다. 정상경험을 통해 초월적인 기쁨과 자유를 느끼며 이 경험이 머릿속에 남아 계속 그 경험을 쌓으려 노력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정상경험을 할 수 있을까? 정상경험은 인간 외적인 정상경험(심미적 정상경험, 성취에 대한 경험)과 인간관계에 따른 경험(가족, 친구, 교사, 동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후자인 인간관계에 따른 정상경험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 이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논리나 비판은 잠시 뒤로 미루고 힘을 빼고 대상과 자신에게 집중을 해보자. 내가 정상경험을 하겠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타인에게 정상경험을 안겨주는 것 또한 정상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친구, 동료, 가족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는 순간 자신도 정상경험을 가질 수 있다.

'과연 나는 지금 어떤 감격의 순간을 느끼며 살고 있으며, 타인에게 어떤 감격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정상경험은 자기의 잠재력을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휘해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25년 늦가을 억수리에서의 정상경험이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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