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일방통행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2.08.0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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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꽤 오랫동안 테두리를 벗어난 기억이 없다.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고민없이 집으로 들어와 나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했다.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고 전화통화도 필요한 경우에만 하다 보니 시시콜콜 수다를 떨어 본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하다.

덕분에 삶이 고요해졌다. 한동안 마음이 물흐르듯 자유롭고, 싫은 이야기 들을 일 없으니 매사에 자로 잰 듯 까칠한 성정을 드러낼 일이 없어졌다. 천천히 내면의 또 다른 나를 들여다보는 여유로움을 가지면서 타인의 실수도 얼마쯤은 관대하게 끌어안는 순한 마음도 생겼다. 한동안 말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낯선이와 함께 있을 때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어색한 분위기를 감당해야 하는 일도 번거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끔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반갑고 ‘오늘 걸을까요?’라는 후배의 아침문자가 기다려졌다. 커피 한잔 할 수 있냐는 선배의 전화에 하루가 행복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누군가와 토론하고 싶은 갈증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며칠 전 근처 사는 문학회 동인들과 번개모임을 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살짝 흥분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막혀있던 소설 이야기며 여러 일상 이야기들에 공감을 느끼는 회원과 모처럼의 소통에 뜨거움을 느끼는 사이 브레이크가 파열되었나 보다. 멈추지 않고 내안에서 폭포처럼 흘러나오는 말들을 감지했을 땐 너무 늦어버렸다. 앞만 보고 즐거워 내가 일방통행을 달리는 사이 누군가에겐 침묵해야 하는 불통의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얼굴이 화끈거리며 후회가 되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말도 적절하게 멈출 수 있는 빨간 신호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동인 중 종교 강좌를 즐겁게 듣는 선배가 있다. 좋은 이야기는 담아두었다 만날 때 들려주시는데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게 된다. 최근 들은 이야기가 ‘소통’이다. 나의 주변을 돌아보며 누구와 불통이 되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지 찾아서 소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를 돌아보면 불통이 되는 상대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아 풀기보단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생각에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침묵해왔다. 굳이 통하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다는 듯 잊은 척 하지만 그 상대를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불통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게 고통을 주는 셈이다.

소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건 말이다. 관심을 표현하고 내 감정을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다. 하지만 불통을 만드는 것도 말이다. 나 혼자만 만족감을 느끼며 풀어놓는 말들은 일방통행이다. 일방통행은 순간적으로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또 다른 벽을 만든다.

사실 요즘은 모든 사회 문제를 ‘불통’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많다. 너도 나도 불통을 이야기하다 보니 세상에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는 듯 세상 모든 것이 문제투성이 인 듯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소통만 되면 만사형통이 될 듯 하다. 하지만 소통도 지나치면 또 다른 불통을 만들어버린다. 중심을 지키는 일 내겐 늘 무거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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